아이들이 부모에게 결코 ‘말’하지 않는, 그래서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35가지 감정의 세계를 꼼꼼하게 정리했다. 아이들이 무엇을 어떻게 느끼는지, 어른들의 감정과 어떻게 다른지, 그 배경이 어디에서 기원했는지를 섬세한 필치로 그려냈다. 특히 저자들은 분노, 슬픔, 화, 불안감, 두려움, 지루함 같은 인간 본연의 감정들이 대다수 부모들에 의해 지나치게 ‘나쁜 감정’으로 취급되고 있다고 일관되게 지적하며, 이 같은 접근이 도리어 아이들이 부모에게 감정을 숨기게 하거나, 자기표현에 서툰 존재로 성장시키고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감정적 어려움을 겪는 성인들의 90% 이상이 아동 청소년기 부모의 감정적 본보기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밝히기도 한다. 따라서 아이의 ‘문제 행동’으로 악화되는 상황을 예방하는 것은 물론, 자존감, 자기 효능감 등 아이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감정적 균형을 잡을 수 있도록 부모의 섬세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지적하며, 이에 관한 부모의 바른 태도와 상황에 따른 유용한 대처 방법을 소개한다.
어린아이의 이타적인 사랑은 무조건적이며, 자기 포기에 가깝게 보이기도 합니다. (적어도 처음에는) 깊은 신뢰에 빠지고, 눈이 먼 것처럼 보입니다. 근본적으로 아이는 사랑하는 사람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처지를 바꿔 생각하고, 이해하고, 인정하고,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실수할 확률이 다소 높기는 하지만) 아이는 사랑하는 사람의 기대를 감지할 능력이 있고, 또 사랑하는 사람의 기대를 충족시킬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p.22 _사랑
아이의 소속감에는 분명한 특징이 있습니다. 소속감은 구체적인 감정인 경우가 드물다는 것입니다. 대개는 편안하고 행복하게 느껴지는 그런 느낌입니다. 하지만 소속감은 위협받거나 사라지려 할 때 그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쫓겨나거나 버려지거나 혹은 배신을 당할 때, 계속 무시당하거나 노력이나 수고에 대한 응답이 없을 때, 소속감은 깨지거나 사라집니다. 또 아이가 또래 집단 내 다른 사람과 다를 때, 더 똑똑하거나 어쩌면 재능이 뛰어날 때, 예민하거나 느리거나 다른 사람보다 쉽게 흥분할 때도 소속감이 위협받습니다. p.35 _소속감
지루함이라는 말속에는 다른 복잡한 감정들이 숨겨져 있을 수 있습니다. 지루함은 때로 구체적이고, 파악 가능한 감정이며, 종종 이해와 다른 관심 사이에서 다른 것으로 전환되는 과정에 있는 감정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지루함을 기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기분은 감정보다 불분명하고, 파악하기 어렵고, 더 폭넓게 작용합니다. p.53 _지루함
부모들은 아이들이 느끼는 이런 배신감의 의미를 간과하곤 합니다. 때로는 “큰일 아냐” 또는 “그렇게 심각한 건 아냐”와 같은 말로 아이를 위로하며 심각한 일이 아니라고 희석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는 도움은커녕 오히려 상황을 더 악화시킵니다. 즉 배신당했다는 감정을 더욱 강화하고, 혼자라는 감정까지 들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 결과,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맺는 태도에도 심각한 저해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배신감을 느끼거나 그런 감정을 지닌 채 오랜 시간 혼자 내버려진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불신하게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p.61 _배신감
수치감이 특히 복잡하고 나쁜 점은 처음에는 자연스러운 부끄러움(창피함)으로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당사자는 이 두 가지를 서로 분리하거나 구별하기 어렵습니다. 아이들에게 이 차이를 설명할 때,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언어와 예를 들어 설명하면 좋습니다. 처음에는 똑같이 느껴지던 자연스러운 부끄러움과 수치감은 어느 순간 매우 다른 결과를 만들어냅니다. 수치감은 대개 뒤끝이 나쁘고 개운치 않습니다. 수치감이 반복되거나 광범위하게 퍼지면, 아이의 근간 자체가 흔들리게 됩니다. p.84 _부끄러움
여러 징후, 아이의 생활 그리고 행동에서 보이는 이른바 다양한 장애들은 아이들이 겪는 무력감과 어려움을 드러내는 표식입니다. 이는 또한, 도움이 필요하다는 호소의 외침이기도 합니다. 비록 아이들이 (더는) 말로 표현하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어른으로서 이러한 도움을 찾는 외침을 주의 깊게 들어야 하고, 도움의 손길을 보내야 합니다. p.92 _무력감
그리움이 논리적 측면에서 다른 감정들과 마찬가지로 비이성적이기는 하지만, 일관되고 의미는 있습니다. 아이가 느끼는 그리움을 이렇다 저렇다는 말로 논리적으로 평가하거나 설명할 수도 없고, 또 그렇게 해서도 안 됩니다. 오히려 아이의 그리움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주고, 아이가 그리움을 갖게 된 계기가 무엇이며, 그 그리움에 어떤 힘과 욕구가 숨어 있는지 알아내는 것이 훨씬 효과적입니다. p.124 _그리움
자기 효능감은 나로 인해 무언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감정입니다. 누군가에게 다다르고, 무언가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감정입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이런 감정을 갖고, 자신이 분명히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감정이 사라지게 되면, 자의식과 자기 가치를 인식하는 데 큰 영향을 끼칩니다. “나는 가치가 없어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저는 무능해요. 아무것도 해내지 못해요.” 아이가 자기 효능감의 감정을 상실하게 되면, 이는 단지 아이의 자기 가치에 대한 의식을 악화시킬 뿐만 아니라 또 자신의 모습인 자의식에도 깊이 각인됩니다. p.163 _자기 효능감
두려움이란 불확실한 것, 잠재적으로 위협이 될 수 있는 것들을 주의하라고 경고하며 우리 몸의 모든 기관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동원하는 감정이므로, 아이들은 당연히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아이가 불안해하지 않고 무서워하지도 않는다면, 오히려 이것이 더 불안하고 무서운 일입니다. 더는 두려울 게 없고, 더는 잃을 게 없는 아이는 두려움과 무서움을 느끼는 법을 잃은 아이입니다. 아이의 이러한 태도는 아이가 살면서 겪어왔던 무시, 멸시와 가치를 깎아내리기와 같은 연속적인 결과물입니다. p.171 _두려움
아이들에게 학습과 연결되는 감정은 유감스럽게도 벌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성적이 나빠서 혼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입니다. 이미 뇌의 작동 과정과 감정에 관해 서술했듯이, 각 신경세포가 받아들인 정보들은 모두 감정과 연결되어 있으며, 대뇌변연계 시스템의 관여하에 이루어집니다. 학습이 감정과 연결된다는 점은 이미 논란의 여지가 없는 사실입니다. 그런 점에서 부모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점은 학습에 관여하는 감정이 어떤 감정이냐는 것, 그러니까 감정이 어떻게 학습을 촉진할 수 있느냐입니다. p.218 _‘쓸모 있다’는 감정은 학습을 촉진한다
시선의 질은 그래서 중요합니다. 시선은 무시와 존중을 담을 수도 있으며, 수치스러움과 진지함을 모두 담을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말하지 않고, 몸짓이나 표정을 달리하지 않아도 시선 하나만으로 아이에게 체벌을 가하고 아이를 감정적으로 침묵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반대로 아이에게 용기를 주고 삶에 대한 활력을 불어넣을 수도 있습니다. p.225 _‘관계의 경험’이 아이의 희로애락을 결정한다
아이의 감정 | 우도 베어·가브리엘레 프릭 베어 지음 | 김현희 옮김 | 284쪽 | 1만7000원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