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으면서 자연과 꽃을 즐기게 되었지만, 이것이 혹시 병을 핑계로 무언가를 회피하려고 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병에서 회복하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생각이 많아졌다.
"때로 푹 쉬어라. 한 해 놀린 밭에서 풍성한 수확이 나는 법."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사실 아프면서 충분히 쉬었다는 생각을 한다. 가만 보면 아직 내 마음속에는 작은 불씨가 꺼지지 않고 남아 있는 것 같다. 사회학자로서의 삶 말이다. 한번 사회학자는 영원히 사회학자인가 보다. 나는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사회가 급변하고 인간관계가 비대면으로 이루어지는 이 시대를 포착해 보고 싶다. 그렇지 않아도 심각한 개인화가 더욱 가속되는 현실을 볼 때 사회학자로서 연구해야 할 과제가 더 많다는 생각이 든다.
한편으로는 이제 사회학자로서의 삶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면서도 건강해지면 수필이든 학문적 글이든 정말 훌륭한 책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꿈틀거린다. 그렇게 고생을 하고도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어쩌면 공부한 사람으로서 당연한 욕심 아닌가.
"우리의 탐험이 끝나는 때는 시작이 어딘지 알아내는 순간이다."라고 영국 시인 T.S.엘리엇이 말했다. 대학 입학시험 면접관이었던 송욱 교수님이 왜 영문학과에 지원했는지 물었을 때, 나는 세계 5개 국어를 배워 기자가 되어 세계를 여행하고, 그 경험을 토대로 소설을 쓰고 싶다고 자신 있게 대답했다. 이제 먼 길을 돌아 나의 시작이 어디였는지 알아낸 것일까. 아니면 새로운 탐험의 시작일까.
걷기는 계속할 것이다. 내 마음속의 우울과 욕심을 다스리기 위해서이다. 그러다 몸이 좀 더 튼튼해지면, 코로나 시대가 극복되고 나면, 지구 반대편의 진짜 산티아고 길 순례에 도전할 생각이다.
나의 산티아고 길을 찾고, 진정한 자아를 찾는 길…. 그것이 글쓰기든, 봉사든, 걷기를 통해서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꿈이 있기에 힘들지만, 오늘도 나는 걷는다.
-심영희, <마음 저 들판, 길을 내고 걷다>, 중민출판사, 1만5800원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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