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은 다시 어린아이처럼, 소녀처럼 싱그러워졌다.
밖에 나와 이 길 저 길을 걸으면서 나무를 보고, 꽃을 보고, 하늘을 보고, 구름을 보았다. 자연과 더불어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우울함이 사라지고, 마음이 즐거워지고, 명랑하게 된 것이다.
봄꽃들이 피기 시작하면 해마다 보는 것인데도 처음 보는 듯 신기하고 행복하다. 나뭇잎이 무성해진 여름의 나무들을 보면 나도 청춘인 것처럼 씩씩한 기운을 얻는다. 가을이 되어 단풍이 붉게 물들면 그 아름다움에 가슴이 벅차다. 눈이 오면 강아지처럼 뛰어나가 쌓인 눈 위를 뒹굴어도 신이 난다.
그뿐 아니다. 별것 아닌 일에도 호호 하하 깔깔거리고 웃음이 터진다. 어렸을 때 즐겨 읽었던, 노란 복수초를 보고 말을 거는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처럼, 만나는 나무와 길과 호수에 이름을 붙이고 다녔던 빨강 머리 앤처럼, 천방지축 뛰어다니는 <작은 아씨들>의 조처럼 말이다.
이런 것들은 이제껏 한 번도 느껴 보지도, 해 보지도 못했던 일들이다. 평생을 모범생으로, 교수로 살아와서 점잔 빼는 것이 몸에 배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것에서 조금 벗어난 것 같다. 정년을 지난 지도 꽤 되어 사회 활동이 많이 줄었고, 병 때문에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뜸해졌다. 무엇보다 코로나19로 만남 자체가 현격히 줄었다. 한마디로 사회적 지위, 체면, 이런 것을 심각하게 따질 필요가 없어졌다.
그렇게 되고 나서야 깨닫게 되었다. 나는 그냥 나일 뿐이지 않은가. 뭘 그리 신경 쓸 일이 있을까. 나이가 무슨 상관인가. 자연을 가까이 할 수 있는 것, 내 발로 걸을 수 있는 자유와 평안, 누군가 옆에 있다는 것에 그저 감사하고, 즐겁고 행복한 마음을 가지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나 자신을 조용히 내려놓게 되었다.
아마도 그래서 내 몸이 낫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디 내 병이 약만으로, 운동만으로 나을 병이었던가. 몸이 아프면 마음이 아프고, 마음이 아프면 몸이 아픈 것이다. 내 병은 스트레스에서 온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렇게 마음이 즐거워지니 몸도 자연히 낫게 된 것이리라.
-심영희, <마음 저 들판, 길을 내고 걷다>, 중민출판사, 1만5800원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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