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우연 직원들이 '숙원' 우주청을 반대하는 이유
지난달 25일 한국형 누리호 3차 발사가 성공했다. '우주 경제'·뉴스페이스(New Space) 시대 개막, 우주 7대 강국 도약 등 떠들썩한 수사가 난무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제 겨우 디딤돌 하나를 놓았을 뿐"이라며 지나친 상찬을 경계한다. 과연 우리나라가 진정한 우주 강국의 대열에 합류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윤석열 정부가 추진 중인 우주항공청 설치 등의 정책은 답이 될 수 있을까?
궁금해 하던 차, 마침 누리호를 개발한 현장 연구자들이 답을 내놨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KARI·항우연) 직원들로 구성된 전국과학기술노조 항우연 지부의 입을 통해서다. 이들은 뜻밖에 윤 정부의 우주청 설치를 반대하고 나섰다. 그러면서 당장 필요한 것은 스페이스X에 맞설 '액체메탄 엔진'이라고 강조했다.
항우연 직원 등 우주 개발 연구자들에게 독립적 우주 개발 전담 기관 설치는 '숙원'이었다. 현장 경험ㆍ전문 지식을 갖춘 '박사'들이 1~2년 잠깐 우주 정책 업무를 맡는 비전문가들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공무원들과 일하면서 자존심이 상하는 것은 물론 비효율과 '정치 바람'의 한계를 느꼈다. 가뜩이나 우주 강국들과 비교해 30~40년은 뒤떨어졌다. 점점 범위가 넓어지고 '유니버스'가 커지고 있다. 정치 바람 타지 않고 독립적이고 힘있게 끌고 나갈 전문 기관이 필요했다.
그러나 이들은 현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우주항공청 설치 특별법안에 대해 반대하고 나섰다. 도대체 왜일까?
우선 '실효성' 문제다. 정부안대로 우주청을 과기정통부 소속 외청으로 할 경우 '만드나 마나 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다. 이와 관련 전국과학기술노조 항우연지부는 지난 1일 성명을 내 "정부가 추진하는 우주청특별법안은 통과되어서는 안 된다"고 반대 입장을 공식화했다. 우주청 특별법안은 현재처럼 전문성이 떨어지는 과기정통부가 우주 정책에 대한 관리ㆍ감독권을 그대로 유지하도록 해 기존과 달라질 게 없다는 비판이다. 무엇보다 우주청장이 독자적인 예산ㆍ입법안을 제출할 수 없어 독립성이 떨어지고, 부처 간 조정ㆍ총괄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 정부는 국가우주위원회의 위원장을 대통령으로 격상시키고 우주청장을 실무위 간사로 둬 조정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현장 연구자들은 애초부터 요구했던 강력하고 독립적인 우주개발 전담 기구를 설치하려면 대통령 산하 직속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실질적으로 국가 우주 개발 전략을 주도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입지'에 대한 반발도 크다. 정치적ㆍ지역적 갈등 소재가 될 수 있어 누구도 입을 열지는 않고 있다. 하지만 우주청을 윤 대통령의 대선 공약대로 경남 사천에 설치하는 것에 대해 항우연 직원들은 불만이 크다. 현재 우리나라 우주 산업은 '머리' 격인 정책ㆍ연구기관들은 대전 대덕연구단지에, 손ㆍ발 격인 생산 기지는 경남 창원ㆍ사천에 위치해 있다. 이런 상태에서 정책ㆍ연구를 총괄 지휘할 우주청이 대전이 아닌 사천에 설치할 경우 실무를 진행할 때 엄청난 비효율이 불가피하다. 머리의 '뇌'를 떼어다 손ㆍ발에 갖다 붙이는 격이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로켓 발사장도 대전에서 3~4시간 걸리는 전남 고흥(나로우주센터)에서 진행된다. 부품 개발 현장ㆍ정책 결정 회의ㆍ발사장 등 주요 업무를 한꺼번에 보려면 국토를 한 바퀴 돌아야 하는 상황이다. 우주청의 입지가 매우 정치적으로 '느닷없이' 결정된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방위사업청을 대전에 설치하는 대신 우주청은 사천으로 보내는 등 '나눠 먹기'식 대선 공약을 통해 입지를 결정했다. 그 와중에 의견수렴ㆍ효율성 분석 등의 절차는 전혀 없었다.
항우연지부는 이같은 우주청에 대한 반대 입장과 함께 다른 정책 대안들을 제시하기도 했다. 우선 우주 관련 공공연구기관들을 통합해 대통령 직속 우주전담기관 산하 우주개발총괄기구로 만들어 우주 인프라 구축을 책임지고 추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민ㆍ군과 산ㆍ학ㆍ연이 선단을 구성하고 역할을 분장해 국가 차원의 추격 전략을 수립ㆍ실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현재 우리나라가 처한 상황에서 '현장 연구자'로서 진정한 의미의 우주 경제 시대를 열기 위해 필요한 과제들을 적시하기도 했다. 스페이스X에 맞설 수 있는 재사용 가능 저비용ㆍ중대형 상용발사체용 액체 메탄 엔진 개발이 가장 먼저였다. 스페이스X가 발사 비용을 대폭 낮춰 전세계 위성 발사 시장을 휩쓸고 있다. 30~40년은 늦어진 한국의 입장에선 틈새시장 개척을 위해서라도 시급히 따라잡아야 한다. 현재 기초·원천 기술이 개발돼 있는 만큼 앞으로 5년 안팎의 기간 동안 수백억 원만 들여도 어느 정도 경쟁력 있는 발사체를 만들어 '틈새시장'이라도 노려볼 수 있다.
항우연 지부는 이와 함께 나로우주센터 제1 발사대의 민간 저궤도 소형발사체용 발사대 개조, 나로우주센터의 상시적 운용을 위한 인력보강ㆍ조직 개편, 미국의 국제무기거래규정(ITAR) 해제ㆍ완화 총력, 범부처 차원의 위성 수요ㆍ활용 통합 관리, 항우연의 발사체ㆍ위성분야를 중심으로 한 우주개발공사 설립, 우주분야 인력 체계적 관리 및 처우 보장 등을 촉구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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