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비한캄사랑’ 재단 세워 캄보디아 아이들 챙겨
봉사활동은 직접 아이디어 내고 현장에서 진행 주도
“당구로 한국과 캄보디아 잇는 투명한 통로가 되고 싶다”
여자프로당구 국내 랭킹 1위, 세계 랭킹 2위인 스롱 피아비. 지난달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린 ‘2023 동남아시아게임’에선 여자 3쿠션 종목에서 캄보디아 최초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64년 만에 동남아시아게임을 개최한 캄보디아가 거둔 쾌거였다. 경기 참가와 봉사활동을 위해 한달간 캄보디아에 머물다 귀국한 스롱 피아비를 마주한 건 수원에 자리한 한 후원사 건물. 피아비는 앞머리를 직접 자르다 망했다면서도 해맑은 미소를 보이며 인터뷰에 임했다.
국제결혼으로 만난 남편이 당구 권유
피아비가 큐를 손에 쥔 건 2010년 한국인 남편을 만나 충북 청주에 자리를 잡으면서다. 친척의 권유로 가족에게 도움이 되겠다는 일념으로 나선 국제결혼 선 자리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당시 캄보디아 현지에서도 국제결혼에 관한 우려가 컸고, 남편과 나이 차이도 많기 났기에 아버지는 만류했지만, “네가 착하고 좋은 사람이니 너도 좋은 사람 만날 거라”는 할아버지 말에 용기를 냈다. 당시로서는 놓치지 말아야 할 기회처럼 느껴졌는데, 할아버지의 말처럼 다행히 누구보다 아내를 위하는 맘씨 좋은 남편을 만나, 그의 권유로 당구를 시작하면서 금메달리스트로 거듭났다.
낯선 타국 생활은 피아비에게 어려운 숙제였다. “너무 힘들면 도망가야겠다”고 생각하고 밟은 한국 땅. 남편은 어색했고, 형편도 넉넉지 않아 머무는 집은 캄보디아 가족에게 보여주기도 민망한 수준이었다. 유튜브로 캄보디아를 검색하며 자주 눈물지었다. 다행히 남편은 그를 타박하거나 적응을 강요하지 않았다. 기다려주고 손에 돈을 쥐여주며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권했다. 하지만 외로움에 사무친 피아비는 자신이 뭘 해야 할지, 뭘 할 수 있는지도 잘 알지 못했다. 보다 못한 남편은 피아비에게 평소 자신이 즐기던 당구를 권했다. 피아비는 “젊었을 적 권투선수를 했던 남편이 자신에게 새로운 도전을 시켜주고 싶었던 것 같다”고 당시를 회상한다.
적잖은 돈 들어간 당구…새벽부터 밤까지 일하는 남편에게 미안함 느껴
그렇게 큐를 손에 들게 된 피아비. 항간에는 큐를 잡을 때부터 대단한 재능을 보여 당구에 매료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지만, 그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남다른 손 감각으로 습득이 빨랐던 건 사실이지만 당구는 피아비가 원한 게 아니었다. “처음에는 이걸 잘해야 남에게 도움이 된다는 생각으로 억지로” 해야 하는 ‘일’에 가까웠다. 만사를 제쳐놓고 연습에만 매진해야 하는 건 피아비의 표현에 따르면 ‘피눈물’이 나는 일이었다. 당시만 해도 당구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그렇다고 당구로 빠르게 돈을 벌게 된 것도 아니었다. 초창기에는 오히려 적잖은 돈이 들어가야 했다. 피아비는 식당이나 공장에서라도 일하며 돈을 벌려고 했지만, 그때마다 남편은 ‘유명한 챔피언이 될 수 있다’며 피아비를 응원했다. 그런 지지가 고마운 일이기는 하지만 때로는 큰 부담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피아비는 “새벽부터 밤까지 일하는 남편에게 너무 미안했다”고 술회한다.
그런 노력은 2017년 아마추어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마침내 빛을 발했다. 대중의 관심이 쏠리면서 피아비는 더 잘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됐고, 자연스레 당구에도 더 흥미를 들이게 됐다. 무엇보다 노력의 결과물로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뻤다. 남편, 가족 그리고 캄보디아의 어려운 아이들을 도울 수 있게 된 것. 어릴 적부터 주위의 어려운 이웃에게 관심을 쏟았던 그는 “당구만 잘 치면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돕고 싶은 사람을 도울 수 있다고…. 나만 잘하면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말한다.
8년간 봉사활동에 푹 빠져…가족 제대로 돕지 못해 미안한 마음
선행을 가장 큰 동기로 삼았던 피아비의 관심은 자신에게 먼 곳에서부터 가까운 곳으로 향했다. 지금까지 받은 상금과 수익을 차곡차곡 모았다면 ‘더 편한 삶’을 누릴 수 있었겠지만, 그는 ‘더 나은 삶’에 우선 가치를 뒀다. 형편이 어려워 의사의 꿈을 이루진 못했지만 ‘피아비한캄사랑’이란 재단을 설립해 도움이 필요한 캄보디아 아이들부터 신경 썼다. 피아비는 “한 번 두 번 봉사활동을 하다 보니 너무 행복한 마음이 들어 8년간 봉사활동에 푹 빠져 살았다. 아직도 불편한 집에 사는 가족들을 제대로 돕지 못해 미안하지만, 아이들을 위한 학교 부지 마련 등에 먼저 손이 가더라. 아마 내년에는 가족들을 조금 더 챙길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한다.
봉사활동은 피아비가 직접 아이디어를 내고 현장에서 진행을 주도한다. 지난달에는 캄보디아 여러 장애인단체에 버스를 보내 300여명의 장애인을 한데 모아 함께 먹고 뛰노는 시간을 가졌다. “돈 주고 끝내는 게 아니라 함께 모여 같이 음식 만들고 함께 뛰어놀았다. 진정한 사랑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여러 장애가 있는 아이들이 너무 착해 많이 울었는데 오히려 아이들이 ‘언니 울지마. 울면 안 이뻐’라며 나를 위로하더라.”
피아비 선행의 핵심은 ‘진심’이다. 돈도 중요하지 않다. 광고 이미지를 만들기 위한 기부는 피아비가 거절한다. 피아비는 “(남을 돕는 건) 내가 돈이 많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캄보디아에 가서 만나보면 오히려 어려운 사람들이 더 기부하려고 한다. 돌아가신 아버지 바지에서 나온 돈을 나누는 분도 있다. 하나하나가 다 감동”이라고 말한다.
피아비는 교육 지원으로 아이들에게 희망 심기 작업에도 열심이다. 본래 학교를 세워 아이들에게 스포츠를 가르칠 계획이었으나 기존 학교를 지원하는 방법이 더 효과적이란 생각에 최근에는 학교에 물품과 재정을 후원하고 있다. 과거 마을 사람들이 십시일반 모아준 돈으로 생활했던 학교 선생님들을 지원하는 한편, 직접 아이들과 부대끼며 함께 하는 시간을 자주 갖고 있다. 피아비는 “아이들이 너무 착하고 똑똑한데 기회가 없다. 기회만 있다면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고 강조한다.
캄보디아에서 선호 스포츠 3위에 당구 올라
선행에 힘쓰는 스포츠 영웅 피아비의 탄생으로 캄보디아에선 큰 변화가 일고 있다. 본래 캄보디아 사람들은 스포츠에 큰 관심이 없다. 피아비가 “한국인의 축구 열광이 부러웠다”고 할 정도다. 하지만 지난달 동남아시아게임에 출전한 피아비에게 캄보디아 사람들은 ‘피아비’ 이름을 연호하며 환호했다. “(스리쿠션) 당구공이 맞으면 터져 나오는 함성이 어마어마하다. ‘피아비’를 외치는 소리에 눈물이 절로 난다. 웃는 캄보디아의 모습이 너무 좋아 3시간이 넘도록 사람들에게 사진을 찍어주기도 했다.” 피아비에 따르면 최근 캄보디아에서 당구는 단숨에 선호 스포츠 3위에 올라섰다.
그런 피아비에게 좋은 시선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당신도 할 수 있다’는 권면에 ‘운이 좋아서 그런 것 아니냐’ ‘유명해지니까 그렇게 말하기 쉽지’라는 식의 비아냥은 큰 아픔이다. 피아비는 “일부 사람들이 제가 묵묵히 참고 노력했던 시간은 보지 않고 현재의 모습만 보고 그렇게 말한다”고 안타까워하면서도 “다른 사람을 도울 때 제일 행복하다. 그게 당구를 통해 얻은 내 꿈이다. 당구도 선행도 ‘직접 보여주면 되지’라고 생각한다. 돈 내기 등으로 안 좋게 보던 당구 이미지도 많이 좋아졌듯이 선행도 보여주면 된다”고 말한다. 아울러 “한국과 캄보디아를 연결하는 꼭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 양국을 잇는 투명한 통로가 되고 싶다”고 강조한다.
*스롱 피아비는
2010년 국제결혼 후 한국인 남편을 따라 충북 청주에 자리 잡았다. 남편의 권유로 2011년부터 당구를 시작해 2017년 아마추어 대회 우승을 시작으로 이름을 알렸다. 올해 기준 여자당구 국내 랭킹 1위, 세계랭킹 2위를 기록하고 있다. 리코스포츠에이전시 소속으로 소속팀은 블루원 엔젤스다.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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