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긴 여름에는 저녁 여섯 시, 해가 짧은 겨울에는 저녁 다섯 시에 퇴근한다. 겨울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늦어도 다섯 시 삼십 분에는 글쓰기를 멈추고 방에서 나온다. 문장을 더 이어 쓰고 싶더라도 일단 자리에서 일어난다. 산책을 해야만 하니까. 산책은 나에게 글쓰기만큼 중요한 일이다.
폭우나 폭설이 쏟아지는 날을 제외하고 매일 저녁마다 한 시간 정도 걷는다. 걸으면서 노을을 본다. 단 한 순간도 똑같지 않은 하늘을, 흘러가는 구름을, 아름다운 나무를, 피고 지는 꽃을 본다. 바람을 느낀다. 새 소리를 듣는다. 동네의 강아지들과 고양이들에게 인사한다. 지는 해를 보면서 지구의 자전을 생각한다. 계절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일몰의 방향을 보면서 지구의 공전을 실감한다. 정적인 내 방과 달리 바깥의 모든 것은 움직이고 있다. 소리 내고 이동하고 변한다. 나타나고 사라진다. 매일 저녁 산책하면서 나는 그것을 보고 듣는다. 세상의 움직임을 느낀다.
책상 앞에 앉아서 일을 할 때는 글을 제대로 쓰거나 쓰지 못하는 상태에만 집중하게 된다. 시야는 좁아지고 생각은 편협해져서, 내가 글을 제대로 쓰지 못하면 마치 큰일이 날 것만 같다. 산책을 하면서 깨닫는다. 방에서 내가 느낀 위기감이나 조급증이 얼마나 터무니없고 우스운 감정이었는지. 세상은 나의 일에 관심이 없다. 내가 글을 쓰지 못한다고 큰일이 날 리가 없다. 내가 글을 쓰지 못하면, 내가 글을 쓰지 못할 뿐이다. 그리고 다시 글을 쓸 수 있다면, 그것은 우선 나에게 다행한 일이다. 글을 쓰는 동안 품었던 착각과 과대망상을 오려 내는 것. 부풀어 오른 부담감의 바람을 빼고 글쓰기를 원래의 자리에 내려놓는 것. 글 쓰는 나와 일상의 나를 분리하는 것. 저녁 산책을 할 때 내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강아지처럼 나는 매일 산책 시간을 기다린다. 걷다 보면 마음이 가벼워진다. 화가 날 때 팔다리를 크게 움직여 성큼성큼 걸으면 그만큼 감정이 줄어드는 것도 같다. 우울할 때 음악을 들으며 느릿느릿 걸으면 그만큼 감정이 옅어지는 것도 같다. 게다가 걷기는 허리 건강에 좋다. 하루 몫의 글을 쓴 뒤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서는 그 순간을 나는 매우 사랑한다.
-최진영 외 6인, <작가의 루틴: 소설 쓰는 하루>, &(앤드),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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