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어2000' 본사 사무실 가보니
지난달 31일 '서비스 중단' 문자…집단소송 준비도
[아시아경제 황서율 기자] 여행사 ‘투어2000’이 지난달 31일부터 돌연 서비스를 중단하고 연락두절되면서 이곳을 통해 여행계획을 세운 소비자들의 발이 묶였다. 1000명이 넘는 피해자들은 환불받지 못할까 노심초사다.
2일 오전 10시께 서울 중구 소재 여행사 ‘투어2000’의 본사 사무실은 불이 꺼진 채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투어2000은 지난달 31일 저녁 7시쯤 여행상품 구매자들에게 ‘사정으로 인해 모든 여행상품의 행사 진행이 어려워 부득이 일괄취소 처리가 진행될 예정’이란 메시지를 보냈고, 1일부터 영업을 중단했다.
갑작스러운 통보를 받은 소비자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안내 메시지에는 환불에 대한 공지는 전혀 없었다. 불안감에 본사를 직접 찾는 이들도 있었다. 사무실 앞에서 만난 노년의 피해자 A씨는 아내와 이집트 여행을 위해 지난달 투어2000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금 포함 총 479만8000원을 지불했다. 잔금인 419만8000원은 ‘투어2000’이 서비스를 중단하기 전날 지불했다고 했다. A씨는 "소비자 입장에선 계획적인 사기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며 "전화도 받지 않아 답답해서 찾아왔다"고 호소했다.
본사와 연락이 닿지 않아 정확한 피해 금액을 추산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투어2000 홈페이지에 표시된 각 상품 예약자 수에 따르면 유럽, 이집트 등 여행상품 금액이 100만원대를 넘는 고액 상품 예약객만 1042명이나 된다. 이들이 예약금(30만원)만 피해를 봤다고 가정해도 손해액이 3억원을 훌쩍 넘는다. 피해자 오픈채팅방에서 피해 금액을 명기한 45명의 금액만 1억4786만원이다. 45명이 고액상품 예약객(1042명)의 2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전체 피해액은 수십억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 중에는 A씨처럼 상품 금액 전액을 환불받지 못한 사례도 상당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용카드로 여행상품을 결제한 소비자들은 그나마 카드사를 통해 돈을 돌려받고 있다. 투어2000의 계좌로 송금한 소비자들은 본사와 연락이 닿지 않아 아직까지 환불받지 못한 상태다. 본사를 찾아 온 김모씨(60)는 "다음 주 수요일에 스페인으로 가는 여행상품을 결제했다"며 "카드 결제 내역은 환불받았는데 현금으로 지불한 예약금은 아직 환불받지 못했다"고 했다. 박모씨 역시 "7명이 예약금 30만원씩 내고 예약을 해놨지만, 아직 돌려받지 못했다"며 "내가 주도적으로 여행계획을 짰는데 같이 가는 친구들에게 미안하다"며 속상해했다.
피해자들의 유일한 피해보상 경로인 한국여행업협회 공제 역시 난망한 상황이다. 협회에서는 공제에 가입한 여행사의 계약 불이행으로 피해를 입었지만 변상을 받을 수 없는 경우 피해를 증빙하면 공제가입 금액 내에서 이를 보상해주고 있다. 그러나 투어2000이 가입한 공제 금액은 2억6500만원이라 피해 금액을 모두 보상하기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또 해당 여행사에서 폐업 신고를 해야 공제가 이뤄질 수 있는데 아직 중구청에서도 폐업 신고는 전혀 되지 않은 상태다.
오픈 채팅을 열어 집단소송에 참여할 피해자들을 모집하며 소송을 준비하는 피해자들도 생기고 있다. 오픈채팅방 방장 정모씨는 "계속해서 피해자들을 모집하는 중"이라며 "지금까지 6명의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전달해줬다"고 알렸다. 사건 발생 이틀 만에 이 오픈채팅방에는 100명이 모였다.
답답한 건 피해자뿐만이 아니다. 투어2000의 여행상품은 GS홈쇼핑, 11번가, 지마켓, 네이버 등에서도 판매가 된 적 있어 이와 관련된 협력업체와 결제 플랫폼에도 문의가 들어오고 있지만, 이들 기업 역시 투어2000 관계자와 연락이 안 되는 상태다. 투어2000과 협력해 홈쇼핑에 여행상품을 판매한 업체 관계자는 "환불을 위해선 구매자 명단을 받아야 하는데 전혀 연락이 안 된다"며 본사를 찾은 이유를 밝혔다. 결제 플랫폼에서는 투어2000 여행상품에 대한 판매금지와 예약 취소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
투어2000 측 입장을 듣기 위해 본사와 관계자에게 수 차례 연락을 취했지만 받지 않았다. 아직도 홈페이지는 닫히지 않아 예약 신청을 할 수 있는 상태이며, 서비스 중단에 대한 어떤 공지 게시글이나 배너도 게재되지 않았다.
황서율 기자 chest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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