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약자 사각지대 시리즈
일반 학교 원하지만 "교장 선생님께 말씀드리세요" 답변에 좌절
정부 지원 법제화 중요…제도 알리는 일이 우선돼야
◆"동생은 조금 느릴 뿐…학교 언제 같이 가요?"
[아시아경제 오주연 기자] "지민(가명)이랑 같이 학교 다닐래. 내가 잘 데리고 다닐 수 있어!"
4살 터울 누나 은영(11, 가명)이는 또래 친구들이 동생들과 함께 등교하는 모습을 늘 부러워했다. 다른 아이들보다 발달이 느려 지민이에겐 같은 얘기를 몇 번이고 반복해야 하고, 때론 불러도 반응이 없고 호응도 없어 서운할 때도 있다. 하지만 은영이는 그런 동생이 부끄럽거나 귀찮지 않다. 오히려 내년 3월 함께 등교할 날만을 손꼽으며 엄마에게 ‘꼭 함께 다닐 수 있게 해달라’고 신신당부했다.
발달장애 아들을 둔 이모(42)씨가 내년 둘째 애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면서 차로 30분가량 떨어져 있는 특수학교가 아닌 큰 애가 다니는 일반 학교를 고려하는 이유 중 하나다.
행여 발달장애를 가진 동생이 있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상처받게 되지는 않을까, 부담을 주게 되는 건 아닐까 조심스러웠지만 ‘내 가족은 내가 지킨다’며 애면글면 살아왔던 엄마를 보고 일찍 철이 들어서일까, 아이들은 서로에게 기대며 단단해지는 법을 배웠다.
"엄마 자식은 지민이밖에 없어! 지민이만 엄마 아들이야?" 어린 은영이가 언젠가 울면서 내던졌던 말들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둘째 지민이는 태어난 지 20개월이 넘도록 걷지 못하고 말도 더뎠다. 주변에서 발달검사를 권해 병원을 찾았지만 대기만 1년이 넘게 걸렸다. 다행히 지인을 통해 일찍 받을 수 있었지만 검사 결과는 뜻밖이었다. 그냥 또래보다 느릴 뿐이라고 생각했지만, 의사는 ‘발달장애’라면서 뇌병변도 동시에 앓고 있다고 했다.
365일, 24시간 꼬박 지민이 곁에 있어 줘야 했던 탓에 4살 은영이는 혼자 컸다. 가뜩이나 미안한데 지민이 학교 입학을 앞두고 본인이 보호자 역할을 자청하니 만감이 교차했다. ‘다르다’는 이유로 지민이뿐만 아니라 가족 전체가 편견 속에 갇혀 살았다. 그러나 장애와 비장애를 둔 두 아이의 엄마로서, 우리 아이들을 ‘이상한 나라’의 우영우가 아니라 평범한 세상에서 키우고 싶어졌다. 그렇게 엄마는 특수학교가 아니라 집 앞 일반학교에 보낼 용기를 냈다.
◆양육하는 사이 놓쳤던 ‘교육’…도움 청한 교육청, 지원센터 모두 학교장 입만 물끄러미
"지난 7년 동안 온갖 검사와 치료에 매달려 살아왔어요. 정부에서 받을 수 있는 지원이 뭔지, 발달장애아를 위한 지역센터는 어디에 있는지 어느 것 하나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오롯이 엄마인 제가 하나부터 열까지 발품, 손품 팔아 알아야 했으니까요. 그런데 문득 학교 갈 시기가 되니까 그동안 제가 놓쳤던 게 생각이 나더라구요. 보육에만 신경쓰느라 ‘교육’은 생각도 못 했던 거였죠."
지금까지 지민이에게 필요한 곳은 안전하게 아이를 돌봐줄 수 있는 ‘보육기관’이었다면, 이제는 또래들과 함께 배움을 터득할 수 있는 ‘학교’가 필요해졌다. 그러나 ‘일반 유치원에 보내는 것도 쉽지 않았는데 학교는 보낼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앞섰다.
한 달에 최대 100만원이 드는 지민이 검사비, 치료비를 감당하려면 아르바이트라도 해야 했다. 그 시간 동안 아이를 봐줄 수 있는 곳이면 됐지만, 일반 유치원에선 ‘발달장애가 있는 아이를 왜 굳이 유치원에 보내려 하냐’는 반응에 차로 20~30분씩 통학해야 하는 통합반이 있는 곳을 찾아다녔다. 그러나 그마저도 대기가 길어 포기하고, 지금은 장애인복지관에 다니고 있다. 학교 입학을 앞두고 이 험난한 과정을 되풀이해야 하는 셈이다.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 개정안에 따르면 학교는 특수교육대상자가 그 학교에 입학하고자 하는 경우, 장애를 이유로 입학 지원을 거부할 수 없게 돼 있다. 그러나 입학하려는 학교에 ‘특수학급’을 만들어달라는 요구를 교육청과 특수교육지원센터에 수없이 넣어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았다. "해당 학교 교장 선생님께 직접 말씀드려보세요."
◆‘조기 발견하면 나아진다’ 신화에 가려진 엄마들의 자기비난…오롯이 ‘엄마’ 몫
지난 달 30대 엄마가 발달장애 판정을 받은 2살배기 자녀와 함께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씨도 처음엔 지민이의 발달장애와 뇌병변 장애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그 후로 끊임없는 자학이 이어졌다. ‘임신했을 때 스트레스를 너무 받았나’‘내 탓일까’‘내가 없으면 아이들은 어떻게 하지’. 자신을 돌볼 새도 없이 두 아이 육아에 매달리느라 본인이 우울증이라는 것도 모른 채 살아왔다. 어린이집에 보낸다고 했을 때 "네 애는 좀 다르잖아"라던 친구의 말, 너무 힘들고 속상해서 가족들에게 한탄이라도 하면 "누가 낳으래?"라고 내뱉던 말들이 비수처럼 꽂혔다. 약을 처방받고, 큰 애 은영이와 함께 심리상담을 받으면서 그나마 억눌려왔던 마음의 빗장도 조금씩 풀어졌다.
"조기 발견하면 나아진다"는 얘기에 발달장애 판정을 받은 뒤부터 해보지 않은 치료도 없었다. 센터에서 만난 한 지인은 지방에 살다가 치료하기 위해 서울로 왔는데 집도 팔고 아이 치료비에 한 달에 300만~400만원씩 쓴다고 했다. 언어치료, 미술치료 등 발달지연에 도움이 된다면 모두 하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이지만, 비보험이라 30분에 6만원씩 하는 치료비를 감당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씨는 법안으로 명문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제 현실에 적용하고, 적극적으로 알리는 일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기본적으로 잘 된 제도라도 홍보가 되어야 하는데 발달장애아를 둔 부모들은 처음에 우왕좌왕하기 때문에 정부에서 하는 지원을 몰라서 못 받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또 발달장애아 문제를 개인 차원으로만 볼 게 아니라 가족과 사회의 문제로 봐달라고 강조했다.
"어느 날 꿈을 꾸는데 방에 문이 없더라고요. 아이들과 저밖에 없는데, 사방이 갇혀서 밖으로 나갈 문이 없어. 살려달라고 소리치다가 깬 적이 있어요. 저 혼자가 아님을, ‘함께’ 사는 사회라는 것을 느끼고 싶어요."
오주연 기자 moon17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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