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속 가장 '보송한 생산물' 만드는 공장 가보니
서울시 성동구에는 새벽부터 분주한 공장이 하나 있다. 최근 장마와 폭염이 이어지면서 세탁 물량이 급증하고 있는 모바일 세탁 서비스 ‘런드리고’의 성수 스마트팩토리다. 성수동의 옛 건물들이 ‘힙’한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듯 이곳 역시 공장이라며 떠올리는 기존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땀에 젖은 빨랫감은 지하1층부터 지상 4층까지 연결된 약 3000제곱미터의 자동화된 공정을 거치면 어느새 깨끗하게 세탁된 후 잘 개켜 포장된 세탁물로 모습을 바꾼다. 특히 폭염으로 물빨래 수요가 급증한 요사이는 옷과 이불 등을 바꾸는 간절기만큼이나 바쁜 시기다. 후텁지근한 한여름, 그 어느 공장보다 보송한 생산물을 내놓고 있는 과정을 따라가 봤다.
30일 런드리고를 운영하는 의식주컴퍼니에 따르면 성수 스마트팩토리에선 매일 약 1000가구의 세탁물을 처리하고 있다. 런드리고엔 매일 3500~4000가구의 세탁 주문이 들어오고 있으며 지난해 7월 문을 연 이곳과 함께 강서구 등촌동과 경기도 군포시의 스마트팩토리 세 곳에서 물량을 나눠 소화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조성우 의식주컴퍼니 대표는 "스마트 공장을 증설하면서 고객들의 긍정적인 피드백과 함께 주문도 증가하고 있다"며 "세탁 퀄리티는 물론 고객 대응과 서비스 만족에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폭염과 장마가 겹친 지금은 세탁 공장이 가장 바쁘게 돌아가는 시기 중 하나다. 런드리고에서 소화하는 생활빨래 주문이 약 20% 증가했을 정도다. 폭염이 시작되고 장마철에 접어든 6월 넷째 주 세탁물 양을 보니 5월 첫째 주 대비 각각 와이셔츠는 27%, 드라이클리닝 하의는 23%, 이불은 20%, 운동화는 17%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실제로 서울 각지에서 수거된 빨래감은 이른 새벽부터 아침까지 쉴 틈 없이 입고되고 있었다. 입고되면 가장 먼저 세탁 종류 별로 분류 작업을 거친다. 세탁기에 돌리는 생활빨래와 드라이클리닝을 해야하는 와이셔츠 등을 구분하고 다른 고객의 것과 섞이지 않게 개별 세탁을 하는 속옷 등도 따로 분류한다. 분류된 세탁물은 미끄럼틀을 타고 지하로 내려가 등록과 검수를 마친다. 기존에는 이 과정에 수작업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달부터 옷 상태를 자동으로 확인하는 ‘스타일 스캐너’가 도입되면서 작업이 더 수월해졌다.
본격적인 빨래는 이제 시작된다. 색상별로 분류해 대형 세탁기에서 물빨래가 돌아가기 시작하고 개별클리닝이 필요한 옷들은 별도의 공간에서 작업된다. 갯수가 가장 많은 와이셔츠는 3층으로 옮겨지고 신발은 4층으로 간다. 세탁물은 레일을 따라 움직이며 점차 묵은 때를 벗는다. 런드리고는 최근 명품 등 고급 의류 세탁을 위한 ‘프리미엄 세탁 서비스’도 시작했다. 이를 위해 검수, 오염 제거, 다림질에 특화된 전담팀을 꾸렸다. 프리미엄 세탁 전용 공정은 개별 정밀 세탁과 자연 건조 방식으로 운영되며 세탁물마다 전문가 1인이 전담해 세탁의 전 과정을 진행하고 있었다.
세탁을 마치면 건조 공정이 시작된다. 와이셔츠는 옷의 팔, 목, 몸통 부위 등을 따로 기계로 다림질 한다. 열풍건조로 말리는 옷과 자연건조가 필요한 옷은 따로 분류돼 작업을 거친다. 이렇게 세탁과 건조가 마무리된 세탁물은 사이즈별로 자동 포장된다. 옷이 자동으로 이동하면 스캐너가 인식해 돌아가야 할 가구별로 세탁물을 모은다. 자동 출고 시스템 ‘키커’는 이렇게 다시 세탁돼 모인 세탁물을 고객별로 분류해 내보내는 시스템이다. 이곳 성수동 공장의 ‘키커’는 동시에 약 400가구의 세탁물을 출고할 수 있다. 하루 1000가구 세탁물 처리를 위해선 매일 2~3번의 공정이 반복돼야 하는 셈이다. 이 과정을 거친 세탁물은 다시 1층으로 내려와 출고를 기다리게 된다. 이젠 ‘빨래 끝’, 런드리고는 세탁 후 배송까지 하루 내에 완료한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이곳 성수 스마트팩토리는 런드리고 독자 기술로 구축했다. 이를 위해 의식주컴퍼니는 지난해 미국 세탁 기업도 인수했다. 1998년 설립된 미국 뉴욕시 소재의 세탁 팩토리 전문 기업인 에이플러스머시너리다. 이 회사 인수로 세탁 스마트팩토리 설계와 설비 조달, 유통과 건설에 이르기까지 자체 기술로 진행할 수 있게 됐다. 조 대표는 "세탁 산업은 다른 분야에 비해 고객의 필요가 유사하므로 글로벌 스탠다드를 만들기 쉽다"며 "앞으로도 원천 기술을 확보함으로써 세탁을 통한 의식주 혁신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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