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과총)는 5일 소속 회원들에게 단체 이메일을 보내 학술지에 특정 집단에 대한 명예훼손이나 허위 사실 유포, 혐오 발언 등이 실리지 않도록 유의해 달라고 요청했다. 과총은 지난달 4일 국회 임혜숙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때 허은아 국민의힘 의원의 발언이 담긴 회의록을 발췌해 전하면서 "학술지 관련 국회 지적 사항이 있어 공유한다"고 명시하면서 "향후 학술지 지원 사업에 아래와 같은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유의 부탁드린다"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허 의원은 당시 임 후보자에게 철학연구회가 2019년 12월 발행한 학술지 '철학연구'에 실린 윤지선 세종대 초빙교수의 논문 '관음충의 발생학'을 거론하며 "아무리 연구자라 해도 특정 개인에 대한 명예훼손이라든가 허위사실 유포 또는 혐오 발언 등을 학술지에 게재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대책 마련을 촉구한 바 있다. 임 후보자도 서면 답변을 통해 '한남, 한남충, 한남 유충' 등의 표현이 한국 남성을 비하하는 표현으로 쓰인다면 적절하지 않다고 답변했다. 당시 청문회에서 허 의원의 요구에 "꼭 확인해 보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이와 관련 과기정통부와 교육부 등 정부 부처들이 실태 확인 및 재발 방지 대책 마련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인문 학술지와 관련된 사항이라 학술단체 등록 및 KCI 논문 등재 업무 쪽을 담당하고 있는 교육부가 과총을 통해 유사 사례 재발 방지를 막겠다고 공문을 보낸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과기정통부도) 조사 결과 등을 모니터링하고 있고 보고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철학연구회에 대한 지원 업무를 맡고 있는 한국연구재단도 윤 교수가 논문 등재시 소속됐던 가톨릭대에 민원을 이첩해 윤리 위반 여부를 조사 중이다. 최근 예비조사를 마치고 본조사에 들어갔으며 10월 중순께 결과가 나온다. 한국연구재단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상식적인 언어를 사용하도록 돼 있어서 혐오 발언 등에 대한 특별한 규제 조항 등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가톨릭대 재단의 연구윤리조사본부를 통해 예비조사를 마친 상태"라고 말했다.
한편 윤 교수의 논문 '관음충의 발생학'은 각주에서 유튜버 '보겸'이 여성의 성기를 칭하는 단어와 인사말 '하이루'를 합성해 만든 '보이루'라는 말이 '여성 혐오' 단어라고 적시했다. 또 한국 남성들의 관음증과 디지털 성범죄의 원인을 분석한다면서 '남성 혐오' 표현을 대거 사용해 논란이 일었다. 한국 남성들이 성차별적 사회에서 자라나면서 '관음충'으로 변한다는 논지다.
이에 대해 유튜버 보겸은 자신의 이름과 인삿말을 섞어 만든 표현일 뿐 여성 혐오와 관계없다며 명예훼손으로 윤 교수 등을 고발하겠다며 반발했다. 윤 교수와 철학연구회 측은 이후 '보이루'라는 단어가 애초에 보겸이 해명한 취지대로 만들어지긴 했지만 이후 여성 혐오 표현으로 변질됐다는 취지로 논문 각주를 변경했지만 사과는 하지 않았다.
철학계에서 논쟁이 빚어지기도 했다. 이충진 한성대 철학과 교수는 지난 5월 초 교수신문 기고를 통해 철학연구회의 사과를 촉구하면서 논문 자체도 논리적 오류가 심각하며 혐오 표현으로 가득하다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철학연구회가)'(각주를)수정 후'는 개인의 명예를 훼손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하지만 당사자 보겸에게는 그렇게 보이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면서 "진정 유감스러운 일이다. 현재 철학연구회가 할 수 있는 것은 보겸에 대한 공개적 사과뿐"이라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또 "윤지선의 논문은 이 부분에서 매우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의 의도가 무엇이든 그의 용어 사용과 그의 전제 선택과 그의 논의 과정 및 결론은 '지금 여기' 사회의 금기를 한참 벗어난다"면서 "'한남유충' '한남충' '관음충인 한국남자' 등은 '지금 여기'에서는 분명 혐오의 표현이며 이런 표현을 사용하는 논의는 혐오의 논의"라고 지적했다.
반면 윤 교수는 6월 초 같은 매체에 반박 기고를 통해 "해당 용어는 교실, 게임 공간, 일생생활 속에서 어린 세대들에게 비하와 모욕의 표현으로 쓰이며 어린 여아들과 젊은 여성들에게 성적 모욕감과 굴욕감, 무력함을 심어줬다"며 사과를 재차 거부했다. 윤 교수는 또 '남성 혐오' 단어를 사용했다는 비판에 대해서도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일부 남아와 남성들이 어떠한 메커니즘에 의해 '관음충'으로 성장, 변천해 나가는가에 대한 발생학적 접근을 위한 개념적 도구"라고 반박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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