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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경영] 유럽의 허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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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경영] 유럽의 허파 23일(현지시간) 벨라루스 수도 민스크에서 반정부 시위에 참가한 시민들이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민스크(벨라루스)=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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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최근 러시아와 유럽연합(EU) 간 대결의 장으로 떠오르며 이슈가 된 나라인 벨라루스는 원래 '유럽의 허파'로 불렸다. 유럽에 남은 마지막 원시림으로 알려진, 서울 5배 크기의 '비아워비아제숲' 등 국토 대부분이 침엽수림으로 가득 차있다. 한반도와 비슷한 크기의 벨라루스는 전 국토가 평야지만, 인구는 우리나라의 5분의 1도 채 안 되는 950만명 남짓이며 대부분 지역이 개발되지 못했다.


국경을 마주한 폴란드에 유럽 최대 탄광들이 즐비한 것을 생각하면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벨라루스가 유럽의 허파가 된 이유에는 아픈 역사가 숨어있다. 1986년 4월 남쪽에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체르노빌에서 원전이 폭발한 이후 벨라루스 전역은 방사능 낙진과 방사능비가 1년 내내 내렸다. 국토 상당부분은 지금도 높은 방사능 수치로 개발은커녕 사람의 거주가 허용되지 않는다. 그 덕분에 원시림이 그대로 보존됐던 것이다.


이런 러시아와의 악연에도 벨라루스 국민은 옛 소련 연방이 해체된 1991년 다른 동유럽 국가들과 달리 러시아에서 독립되는 것을 끝까지 반대했다. 서쪽에는 폴란드, 남쪽에는 우크라이나, 동쪽에는 러시아란 열강들로 둘러싸인 상황에서 독립은 곧 끝없는 전쟁을 의미했다. 이미 앞서 이 나라의 800년 역사는 폴란드와 러시아의 피로 피를 씻는 전쟁으로 얼룩져있었다. 인구가 적은 이유도 대부분의 국민이 끝이 보이지 않던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었다.


옛 소련이 무너지자마자 벨라루스 국민의 우려는 현실로 다가왔다. 미국과 유럽은 2000년대 초반부터 동유럽 국가들을 일제히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로 끌어들였고, 폴란드를 비롯해 벨라루스의 서쪽에 위치한 국가들은 모두 NATO 가맹국이 됐다. 앞마당을 잠식당할 것으로 우려한 러시아는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을 결사반대하며 군사적으로 압력을 가했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병합은 러시아가 정말로 무력침공을 할 수 있다는 사실도 보여줬다.



이런 상황을 악용한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은 안보를 튼튼히 하겠다는 명분하에 권위주의적 통치로 26년간 장기독재를 이어왔다. 하지만 오히려 자신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러시아와의 국가합병을 추진하다 다시 반대하며 외교에 큰 혼선만 가져왔다. 이제 EU로부터는 제재를, 러시아로부터는 침략위험을 감수해야할 상황에 빠진 국민은 둘로 쪼개졌고 각자 루카셴코의 퇴진과 지지를 외치기 시작했다. 유럽의 허파는 이제 마지막 거친 숨이 될지도 모를 생사의 갈림길 위에 놓여있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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