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종화 기자]담벼락을 타는 고양이를 보신적 있으신가요? 2~3미터 정도의 담 위에서 훌쩍 뛰어내리는 것은 별로 어려워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고양이가 20층 이상의 고층 아파트에서 떨어지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실제로 아주 높은 건물에서 추락한 고양이가 살아남은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2014년 3월 부산 해운대구의 한 아파트 24층에서 추락한 고양이가 멀쩡한 상태로 발견됐습니다. 생후 6개월 된 영국산 아비시니안종 암컷 고양이 '살구'는 베란다에서 혼자 장난치다 밖으로 떨어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깜짝놀란 고양이 주인은 황급히 1층으로 내려갔는데 살구는 아파트 화단 옆에 웅크리고 앉아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곧바로 병원으로 데려가 진찰한 결과 살구는 골절상도 없고, 쉽게 치료할 수 있는 폐출혈 증세만 나타나 며칠이 지나 바로 퇴원했다고 합니다.
해외에서는 더 높은 곳에서 떨어진 고양이가 생존한 경우도 있습니다. 2008년 12월 호주 골든코스트의 34층 아파트에 살고 있던 고양이 '부두(Voodoo)'가 아파트에서 떨어집니다. 평소 아파트 발코니 위를 아슬아슬하게 걷는 것을 좋아했다는데 이날은 원숭이가 나무에서 떨어진 셈이지요.
고양이가 갑자기 사라지자 주인은 추락했음을 깨닫고 죽음을 예감했는데 너무 생생한 모습으로 화단에 앉아 있어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화단의 풀숲 사이에 부러진 나뭇가지들과 부두의 털이 곳곳에 남겨져 있었지만 부두는 큰 이상이 없었습니다. 동물병원에서도 떨어질 때 나뭇가지에 긁힌 가벼운 찰과상 외 골절이나 장기파손은 전혀 없었다고 합니다.
무려 60~85m 정도의 높이에서 떨어진 동물이 골절상도 없이 생존했다는 말입니다. 고양이들은 그 높은 곳에서 떨어지고도 어떻게 생존을 할 수 있었을까요? 그 비결은 '정위반사(Right reflex)'에 있습니다.
미국의 한 학자가 고층건물에서 떨어진 후 동물 응급센터를 방문한 고양이 132마리를 대상으로 데이터를 수집·분석합니다. 그 결과 놀랍게도 90%의 고양이가 생존했고, 37%의 고양이만이 응급조치가 필요했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생존한 고양이 중에는 32층에서 떨어져 이빨이 부러지고 타박상을 입었지만 48시간 뒤에 생생한 상태로 퇴원한 고양이도 있었다고 합니다.
프랑스의 한 학자는 고속 촬영장비를 동원해 고양이가 추락할 때의 낙법을 분석했습니다. 고속 촬영된 사진을 보면, 뒤집혀서 떨어지던 고양이가 몸의 앞부분을 시계방향으로 회전하자 몸의 뒷부분은 그 반대로 회전합니다. 이 모습이 고양이가 높은 곳에서 떨어질 때 보여주는 정위반사라고 합니다.
정위반사는 고등 척추동물이 추락시 머리를 항상 올바른 상태로 유지하려고 하는 반사를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높은 곳에서 거꾸로 떨어져도 머리를 올바른 상태로 유지하려고 자신의 몸을 비틀게 됩니다. 이때 떨어지면서 팔다리를 펴 공기가 닿는 표면적을 넓혀 공기의 저항을 받아 떨어지는 충격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정위반사가 이뤄지는 시간은 0.2~0.5초 사이의 찰나라고 합니다. 그 이후에도 공기의 저항을 받아들여 낙하의 충격을 줄일 수 있는 시간이 어느 정도는 필요합니다. 정위반사가 이뤄지는 시간은 대략 고양이가 6~7층에서 떨어질 때 걸리는 시간과 비슷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6~7층 이하의 높이에서 떨어지는 고양이는 오히려 큰 부상을 당하거나 생명을 잃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낮은 곳이 오히려 고양이에게는 독이 되는 셈입니다. 최근 건물 옥상이나 6~7층 이하의 아파트에서 고양이를 키우면서 추락 방지장치를 하지 않는 가정이 많습니다.
어느날 고양이가 사라졌는데 나중에 화단 근처에서 사체로 발견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고 합니다. 반려묘족이 늘고 있습니다. 난간타기를 즐기는 고양이가 집에 있다고요? 추락 방지장치를 반드시 설치하셔야 합니다.
고양이가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생존할 가능성이 사람보다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불사신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생존 여부를 실험한다는 이유로 높은 곳에서 고의로 고양이를 떨어뜨리는 행위는 결코 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김종화 기자 just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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