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아 생명권 존중과 생명 경시 풍조 우려에 낙태죄 '강화' 목소리도
[아시아경제 윤신원 기자] 최근 낙태죄 존폐를 두고 논란이 격화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낙태를 비도덕적 진료행위 항목에 명시했다가 대한산부인과의사회가 불법 낙태 시술을 파업하는 사태에 이르면서부터다. 낙태의 불법 여부를 두고 헌법재판소에서 위헌소송이 진행 중이라 복지부는 헌재 결정 때까지 유예키로 했지만 논란은 잠재워지지 않고 있다.
지난 28일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기자회견을 통해 불법 낙태 시술 보이콧 의사를 밝혔다. 앞서 복지부가 낙태 시술을 비도덕적 진료행위 항목에 포함시키는 내용의 시행규칙을 시행한 데 대해 맞선 것이다. 복지부에 따르면 낙태 시술을 행한 의사는 1개월의 자격정지에 처해진다.
의사회의 강력한 반발에 정부는 해당 시행규칙을 당분간 보류하기로 했다. 현재 낙태 시술 의사 처벌 규정인 ‘형법 270조 1항’에 대해 헌재가 위헌 여부를 결정할 때까지다. 사실상 정부가 헌재에 결정을 맡긴 셈이다.
낙태죄는 태아의 생명권 존중이냐, 여성의 자기결정권이냐를 두고 지난 수 년 동안 논쟁을 벌여왔다. 여성단체 등은 여성의 임신과 출산에 대한 결정권을 정부가 침해하고 있다며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고 있고, 한편에서는 태아의 생명 존엄성 그리고 자유로운 낙태가 가져 올 생명 경시 풍조 등을 우려해 낙태죄를 오히려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모자보건법상 강간 혹은 준강간, 근친상간, 유전학적 질환 등 예외 경우를 제외한 낙태 행위는 전면 금지돼 있다. 그런데 여성단체들은 합법적인 이유로 낙태를 하려는 경우에도 시술할 수 있는 상황이 여의치 않다고 지적한다.
특히 강간에 의한 임신의 경우 여성은 자신이 성폭력 피해자란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성폭력상담소에서 서류를 발급받아 가해자를 고소한 뒤 가해자가 기소 의견으로 송치돼서야 합법적 낙태가 가능하다. 만약 가해자가 ‘합의한 성관계다’ 등으로 죄를 부인한다면 조사 기간이 길어져 임신기간도 길어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현행법상 낙태가 가능한 기간은 임신 24주에 불과하단 점이다. 임신 여성은 24주 내에 가해자의 ‘유죄’를 받아내야 하는 셈이다. 무죄로 밝혀지거나 24주가 지나면 선택지는 출산 혹은 불법 낙태뿐. 현재 국내에서 이뤄지는 낙태 시술 중 90% 가량이 불법적으로 행해지는 이유기도 하다. 김동석 대한산부인과의사회 회장은 “낙태죄와 관련한 형법과 모자보건법 등은 사회적인 합의가 필요한 내용이 다수 포함돼 있다”며 “현실과 괴리가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낙태죄 폐지를 둘러싼 헌법소원은 지난 2012년에도 있었다. 당시 헌재는 합헌 4 대 위헌 4 판결을 냈지만 정족수 미달로 합헌이 결정됐다. 하지만 6년이 흐른 지금 낙태죄 폐지 요구가 높아졌고, 현 정부에서 새로 임명된 헌법재판관들이 낙태죄 폐지에 대해 긍정적인 발언을 한 만큼 헌재의 판단이 바뀔 가능성도 높다. 헌재 관계자는 신중을 요하는 사안인 만큼 올해 안에 결정될 가능성은 낮다고 설명했다.
윤신원 기자 i_dentit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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