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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의 땅, 시나이]②성지에서 지옥으로, '중동의 화약고'가 된 시나이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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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의 땅, 시나이]②성지에서 지옥으로, '중동의 화약고'가 된 시나이반도 영화 '십계'에서 시나이산에서 십계명을 받아 내려온 모세의 모습.(사진=영화 '십계' 장면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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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오늘날엔 테러의 땅으로 변질되고 말았지만, 시나이반도는 원래 크리스트교와 이슬람교, 유태교 등 중동지역에서 태어난 3대 종교의 공통 성지로 유명한 곳이다. 시나이반도 남부에 위치한 '시나이산'은 성경에 등장하는 모세가 십계명을 받은 성지로 유명하다.

시나이산은 이집트의 자누브시나 주에 위치한 해발 2285m의 산으로 이집트 및 중동 일대의 성산(聖山)으로 알려져있다. 사실 모세의 출애굽기 내용이 나오기 이전부터 이집트와 중동 일대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있었다고 전해진다. 대부분 지역이 사막으로 이뤄진 중동 일대에서 쉽사리 찾아보기 힘든 거대한 산지라 예전부터 여러 신화와 연결돼있었다고 한다.


시나이(Sinai)란 이름 자체도 매우 오래 전부터 전승된 것으로 알려져있는데, 중동에서 매우 오래전부터 전승돼 내려온 달의 신, 'Sin'의 이름에서 왔다는 설이 있다. 기원에 대해서는 각종 설들이 난무하고 있지만, 대체로 신성한 장소로 여겨지고 상고시대부터 성소로 쓰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기원전 3000년경에는 이집트인들이 구리광석을 찾기 위해 탐험을 했었다는 기록도 남아있다고 한다.

[테러의 땅, 시나이]②성지에서 지옥으로, '중동의 화약고'가 된 시나이반도 크리스트교, 이슬람교, 유태교의 공통 성지이자 예로부터 성산(聖山)으로 불려온 시나이산 모습(사진=두산백과)


그 이후, 이 시나이반도는 아시아에서 아프리카로 진출하는 주요 통로로서 팔레스타인 일대와 함께 무수히 많은 침략을 받으며 수도없이 주인이 바뀌었다. 상고시대부터 이집트 왕국의 지배를 받다가 앗시리아, 페르시아, 마케도니아, 로마, 이슬람제국, 오스만 터키 등의 지배를 받았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오스만 터키군과 영국군간 격전지이기도 했으며, 전후 시나이반도는 이집트 영토로 편입됐다. 이후 잠시 평화가 찾아오는 듯 했으나, 2차대전 이후 본격화 된 중동전쟁의 무대가 되면서 또다시 중동의 화약고가 됐다.


1956년, 이집트 정부가 수에즈운하 국유화를 일방적으로 선언하면서 영국과 프랑스, 이스라엘 3국이 연합해 제2차 중동전쟁을 일으키면서 시나이반도는 큰 피해를 입었다. 3차 중동전쟁 이후로는 잠시 이스라엘이 통치하기도 했으나 결국 4차 중동전쟁 이후인 1981년, 이스라엘이 이집트와 국교 정상화를 시작하면서 반환됐다. 당시 시나이 반환은 이스라엘 내부에서 엄청난 반대에 부딪혔지만, 현실적으로 인구 400만 남짓이던 이스라엘이 자국 영토보다 거대한 시나이반도까지 통치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에 반환됐다.


이집트에서는 이런 중동전쟁의 기억과 함께 1981년, 친미 세력인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장기독재가 시작되면서 거의 방치된 땅이 됐다. 여기에 대한 불만이 쌓인데다 가자지구 및 팔레스타인 일대 무장조직들이 시나이반도 일대를 거점으로 삼기 시작하자 각종 무장단체들이 시나이반도에 입주하기 시작했다. 2011년, 이집트 혁명으로 무바라크 독재정권이 무너지자 이들 무장단체들이 각지에서 반란을 일으켰으며 이집트군은 2013년부터 토벌작전을 개시해 계속 전쟁을 펼치고 있으나 작전지역이 넓고 사막이 대부분이라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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