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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채은의 인생소설]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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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채은의 인생소설]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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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구채은 기자] 아자리는 발에 족쇄를 채우고 동료와 두 줄로 걸었다. 그녀는 럼주와 화약 60통과 함께 교환되는 대량 구매의 일부였다. 노예상인들은 상품의 눈과 관절, 척추를 확인했다. '검둥이' 꼬마들은 헐값에 무더기로 시장에 나왔다. 건장한 남자와 가임기 여자들은 높은 값에 팔렸다. 성실하고 힘 좋은 아샨티족 무리를 두고 입찰 전쟁이 벌어졌다. 행렬의 보조를 맞추지 못하면 머리를 베어 꼬챙이에 꿰어 버렸다.

콜슨 화이트헤드의 장편소설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는 노예 제도가 있었던 '야만의 시대'를 정면으로 그리는 소설이다. 1800년대 서아프리카 베냉 남부 도시, 우이다 항구는 노예를 선적하기 위해 드나드는 배들로 붐볐다. 여기서 생애 처음으로 바다를 본 코라의 할머니, '아자리'가 묶여 있다. 당시 흑인 노예 여성은 '새끼를 낳을 수 있는 노예'여서 조폐국, 곧 '돈을 낳는 돈'과 같이 여겨졌다. 랜들가 대농장 판매 대리인은 아자리를 292달러에 샀다. 아자리는 거기서 메이블을 낳고 메이블은 코라를 낳는다.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는 '아자리→메이블→코라'로 이어지는 모계 혈통의 여성이 어떻게 참혹했던 '노예의 3대'를 겪었는지 말해준다.


악착같이 살아가던 코라에게 어느날 시저라는 흑인청년이 나타난다. 글도 읽고 쓸줄 아는 이 청년은 코라에게 도망을 가서 자유를 찾자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처음으로 자신이 사는 남쪽에도 지하철도가 놓여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코라는 시저와 함께 도망친다. 하지만 그녀를 뒤쫓는 노예 사냥꾼 리지웨이가 있다.

소설은 풍부한 자료조사를 토대로 했다. 1930년대 노예출신들의 실화를 수집한 연방작가프로젝트(Federal Writers' Project)에서 취재된 내용이 바탕이다. "아자리는 백인들의 과학자들이 세상의 원리를 이해하려고 이면을 꿰뚫어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밤하늘의 별 운행, 혈액 속 체액의 조합, 풍성한 목화 수확에 필요한 적산 온도. 아자리는 제 검은 몸에 대한 과학을 세우고 관찰을 해나갔다. 모든 것에 저마다 값어치가 있었고 그 값이 바뀔 때 다른 것도 전부 따라 바뀌었다. 부서진 조롱박은 물이 담겨있을 때 보다 가치가 덜했고 메기를 낚은 갈고리는 미끼만 내준 갈고리보다 더 값졌다. 미국에서 신기한 것은 사람이 곧 물건이라는 점이었다." 이런 대목은 1800년대 끔찍했던 노예제도의 실상을 보여줌과 동시에 당시의 종교, 자본주의, 개척자 정신이 어떻게 노예제도를 뒷받침해주면서 당시 사회를 구성할 수 있었는지를 생생하게 묘사한다.


코라는 우여곡절 끝에 자유를 찾아 지하철도를 타게 되지만 사우스캐롤라이나와 노스캐롤라이나를 거쳐 인디애나로 가는 과정에서 결을 달리하는 차별과 폭력을 경험한다. 흑인을 대상으로 의학실험을 벌이고, 화학적 거세를 하는 한편 무자비한 노예순찰대와 마주친다. '지금, 여기'에도 존재하는 차별과 폭력의 서사를 보여주는 은유와 같이 읽힌다.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지하철도'는 노예제도가 폐지되기 이전인 1800년대, 남부의 노예들이 북부의 자유 주나 캐나다로 탈출할 수 있도록 도왔던 점조직이다. 노예제 폐지에 뜻을 같이한 수많은 백인과 흑인들이 비밀리에 도망 노예들에게 먹을 것과 은신처를 마련해주고 길을 알려주었다. 이를 SF적인 상상력과 스릴, 핍진함으로 엮은 이 소설은 2016년 전미도서상, 2017년 퓰리처상까지 한 해동안 미국 출판계 거의 모든 상을 휩쓸었다. "강력하고, 거의 환각을 일으키는 소설이다. 작가는 미국의 과거와 현재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뉴욕타임스가 이 책에 붙인 카피다.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콜슨 화이트헤드 지음/황근하 옮김/은행나무/1만4000원




구채은 기자 faktu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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