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급여 줄면 병원 수익 감소
첨단기술 도입 등 위축·지연
가격 통제에 산업 위축 우려
업계 "관련 대책 조속히 마련"
[아시아경제 고형광 기자] 전립선암 환자 A씨는 올해 초 다빈치 로봇수술 후 30일 동안 병원에 입원을 했고, 의료비 1612만원 중 1202만원을 병원에 냈다. 로봇수술에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전체 비용의 약 75%를 고스란히 본인이 부담한 것이다. 하지만 9일 정부가 발표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으로 그동안 '비급여'로 분류됐던 로봇수술이 2~3년 내 '급여'로 전환돼 건강보험이 적용되면 A씨와 같은 환자는 기존 부담하던 것보다 48% 적은 628만원만 내면 된다.
환자들 입장에선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병원과 의료기기 업계는 마냥 반길 수만은 없는 처지라는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건강보험 진료비가 원가에 못 미치는 현 상황에서 이처럼 비급여 진료가 줄어들면 병원 등 의료기관에선 그만큼 수익이 줄어들게 돼서다. 수익이 줄어든 병원 입장에선 새 의료기술을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더뎌질 것이 뻔하고, 이와 연관된 산업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새로운 의료기술 도입이 늦어져 환자들의 의료 선택권이 줄어들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한국 의료가 세계적 수준으로 발전한 데는 비급여시장을 기반으로 최첨단 기기ㆍ기술을 도입해 치료에 적용해 온 의료계의 움직임이 주효했다.
정부가 건강보험 대상으로 제시한 '치료에 필요한 비급여'는 자기공명영상(MRI), 초음파 검사 등 '의료행위'가 약 800개, 수술재료ㆍ치과충전재 등 '치료재료'가 3000여개다. 단기적으로 가격에 대한 부담에 확대 시행하지 못했던 MRIㆍ초음파 시술이 증가할 수 있지만, 오히려 급여화에 따른 가격관리로 의료산업엔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높다. 실제 대한의사협회는 전날 정부의 대책 발표 직후 "비급여 항목이 보험급여권으로 들어오는 과정에서 시장가격에 못 미치는 낮은 수준으로 비용이 정해지면 의료기관에서 해당 항목의 시술을 기피하게 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
여기에 더해 정부는 앞으로 시장에 선보일 새로운 의료기술도 최대한 '급여화'를 통해 가격 통제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현재 새로운 의료기술이 임상현장에서 사용되려면 '신의료기술평가'를 받아야 하는데, 지난해 기준 신의료기술평가 통과 항목 중 4분의 1가량이 비급여로 결정됐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 비율을 더 낮춰 최대한 급여 또는 예비급여로 편입시키는 것은 물론, 남용 우려가 있는 경우 실시 의료기관을 제한해 시행토록 하겠다는 방침이다. 의료기관이 신의료기술 도입에 적극적인 건 비급여를 통한 비용보상 기대가 강했기 때문인 만큼, 급여로 편입돼 가격이 낮아질 경우 기술개발 유인은 급격히 떨어질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관계자는 "국가가 관리하는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하면 관련 의료기기 산업은 필연적으로 위축되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며 "보장률 80%가 넘는 선진국들의 의료산업이 상대적으로 발전하지 못한 이유도 이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또 "(정부가) 의료산업 발전을 포기하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하루빨리 관련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형광 기자 kohk010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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