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이재용 결심 D-1]스모킹건 없는 세기의 재판

시계아이콘읽는 시간1분 51초

[아시아경제 명진규 기자] 총 52 차례에 걸쳐 진행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재판이 7일 결심을 맞는다. 재판 과정을 통해 특검측은 '3대 스모킹 건(결정적 증거)'로 제시한 장충기 전 삼성미래전략실 차장(사장)의 휴대폰 메시지와 안종범 전 수석의 업무수첩, 청와대 말씀참고자료 등을 제시했지만 뇌물공여 사건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특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독대를 통해 뇌물을 제공하는 대신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비롯해 경영권 승계에 도움을 주기로 했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현재 특검이 제시한 증거로는 실제로 뇌물과 청탁이 오갔다는 점을 재판과정에서 밝히지 못했다.

법조계에선 이번 재판에서 특검의 주장대로 뇌물공여를 입증하긴 어렵다는 입장이다. 뇌물공여로 결론을 내 놓고 수집한 증거들을 무리하게 짜맞추다 보니 간접 정황증거만으로 재판이 진행되는 무리수를 뒀다는 의견들이 지배적이다.


◆장충기 전 사장 휴대폰 문자메시지= 특검이 이번 뇌물공여 사건의 결정적 증거로 제시한 장 전 사장의 휴대폰 문자메시지에는 부정청탁과 관련한 내용은 없었다. 특검은 장 전 사장이 이헌수 전 국정원 기획조정실장과 삼성 합병 관련 정보를 교환한 사례에 주목했다.

국가기관인 국정원과 사기업인 삼성이 밀접하게 정보를 교환한 것 자체가 뇌물과 부정청탁이 오간 결과로 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반도체 사업이라는 국가 기밀 사업을 진행하는 삼성전자의 특성이라는 것이 전자업계의 설명이다.


국정원은 국내 반도체 업계의 주요 인력들을 밀접하게 관리한다. 중국, 미국, 일본 등 삼성전의 반도체 신기술을 빼가려는 시도가 잦은 만큼 이와 관련한 동향, 정보들을 밀접하게 주고받는다.


실제 일부 산업스파이 사건으로 삼성전자가 국정원측에 관련 정보를 제공해 도움을 준 적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 전 사장의 휴대폰 메시지 내용은 이같은 사실을 설명할 뿐 특검이 주장하는 뇌물공여와 관련된 메시지는 없었다.


메시지 내용은 장 전 사장의 업무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삼성그룹 전체의 대관 업무를 담당하는 만큼 관련된 정보들을 보고 받고 이를 최지성 전 삼성미래전략실장(부회장)과 담당해 왔기 때문이다.


장 전 사장은 피고인 신문에서 "임원들에게 매년 휴대폰을 바꿔주는데 특별히 감출 것도 없고 해서 수년간 쓰던 휴대폰을 그대로 썼다"고 증언했다. 특검의 조사가 시작되는 시점서도 장 전 사장은 해당 휴대폰을 그대로 쓰고 있었다.


◆안종범 전 수석의 수첩= 대통령과 기업인들이 독대할때 상황을 메모해 놓은 안종범 전 수석의 수첩은 아예 재판 참고를 위한 정황증거로만 채택됐다. 법원은 "수첩에 기재된 내용이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독대 내용이라는 점에 대한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증거능력이 인정 안됐다는 점은 증거로 사용할 수 있는 법률상 자격이다. 이는 안 전 수석의 수첩이 이번 사건의 혐의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로서 부족하기 때문이다. 해당 수첩은 대부분 단편적인 단어들로 이뤄져 있다.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2차 독대 이후 수첩에 제일기획 스포츠 담당 김재열 사장, 메달리스트, 승마협회 등의 단어가 기재돼 있다.


이번 뇌물공여 사건과 관련이 있는 것은 승마협회 한 단어다. 뇌물공여와 관련된 내용은 없다. 이들 단어만으로는 두 사람 사이에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는 파악하기 어렵다. 당시 정황을 설명한다고 보기에도 어려운 만큼 법원은 이를 수첩의 내용과 상관 없이 수첩의 기재가 존재한다는 자체에 대한 정황 증거로 채택했다.


◆청와대 말씀자료= 특검은 박 전 대통령이 이 부회장과의 독대를 위해 준비한 말씀자료에서 '삼성이 우리나라 대표 기업인데, 경영권 문제가 잘 해결되길 바란다'는 취지의 문구를 확인한 뒤 이를 부정청탁의 증거로 제시했다.


해당 자료 역시 단순 정황에 불구하다. 당시 삼성그룹은 각 계열사를 통합, 매각, 정리하며 체질 개선에 나선 바 있고 이는 경영권 강화, 승계 작업의 일환으로 해석돼 왔다. 이같은 상황에서 대통령과 기업인의 독대 자리에서 이정도 멘트는 흔하다는 것이 재계의 의견이다.


여기에 더해 말씀자료의 형식 자체에 대한 논란도 있었다. 해당 자료가 청와대에서 사용하는 말씀자료와는 양식 자체가 다르다는 점이다. 때문에 이를 두고 특검측은 말씀자료, 삼성측은 참고자료에 불과하다며 공방을 벌이기도 했다.


◆증거 없는 재판...재계, 여론재판 우려= 재계는 이번 재판 과정에서 제시된 증거 대부분이 단순 정황증거에 불과하고 특검의 주장 대부분이 '이랬던 것 아니냐'는 추측으로 진행된 만큼 여론재판을 우려하고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관심 있는 사안이라 지켜보고 있지만 특검이 가진 것이 너무 없다"면서 "유죄 입증이 쉽지 않다 보니 오히려 법원의 부담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재계 한 고위 관계자는 "과거 법대로 소신껏 판결을 했던 판사 상당수가 국민들의 예상과 전혀 다른 결과를 내 놓으며 마녀사냥을 당한 사례들이 많았다"면서 "이번 사건 역시 법리적으로 볼 때 유죄 입증이 어려워 판결이 어떻게 나든 후폭풍이 상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명진규 기자 aeon@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