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90만명 폐업, 12년 만의 최고…'줄도산' 기록 갱신
외식업 폐업률 가장 높아…줄줄이 문닫는 식당
외식산업연구원 "최저임금 인상으로 2020년까지 27만명 일자리 잃어"
[아시아경제 이선애 기자]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는 A씨는 최근 지인들과의 모임을 자주 했던 곳인 신촌의 유명 일식집을 찾았다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알고 있던 전화번호가 나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직접 찾아갔지만 식당이 폐업된 것. 그는 "역사가 오래되고 단골이 많아서 이 일대에서는 유명한 맛집이었는데 갑자기 문을 닫아 깜짝 놀랐다"면서 "오랜 경기침체에도 잘 버티던 곳인데 김영란법 등의 여파가 크긴 한 모양"이라고 말했다.
경기불황과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로 직격탄을 맞고 있는 자영업자들의 폐업이 속출하고 있다. 손님이 줄어들어 높은 임대료, 인건비도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고급 식당들뿐 만 아니라 유명 맛집들도 문을 닫거나 업종을 전환하는 곳도 나오고 있다.
여기에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안이 발표되자 더 이상은 버티기 어렵다는 분위기가 더욱 커지는 모습이다. 직원들의 임금 인상을 감내하려면 고용을 줄이거나 폐업을 고민할 수 밖에 없다는 게 이들의 항변이다. 최저임금이 현실화되는 내년부터는 자영업자들의 줄도산이 가속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기도 하다.
18일 국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창업한 사업자는 122만6443명으로 1년 전(119만1009명)보다 3% 늘어난 반면 폐업한 사업자는 90만9202명으로 2015년(79만50명)보다 15.1% 급증했다. 하루 평균 3360곳의 사업장이 새로 문을 연 사이에 2490개 사업장이 문을 닫은 셈이다. 창업자 수는 국세청이 관련 통계를 공개하기 시작한 2002년(123만9370명) 이후 14년 만의 최대치를 기록했다.
폐업자 수도 2004년 96만4931명 이후 12년 만의 가장 많았다. 특히 자영업자로 분류되는 개인사업자의 폐업이 많았다. 개인사업자 폐업자 수는 지난해 83만9602명으로 집계돼 1년 전(73만9420명)보다 10만182명(13.5%) 늘었다. 2011년 이후 5년 만에 최고치다. 개인 창업자 수는 지난해 110만726명을 기록했지만, 1년 전에 견줘보면 3만2413명(3%) 정도 늘어나는 데 그쳤다. 개인사업자들 사이에서는 창업보다 폐업이 훨씬 더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외식업의 폐업이 심각한 상황이다. 한국공정거래조정원이 최근 공개한 가맹본부 정보공개서 등록 현황을 보면 창업의 환경이 녹록하지 않다는 것을 여과없이 보여준다. 2015년 기준 해지 및 종료(폐점) 가맹점 수는 2만4181개로 폐점률(당해연도 폐점ㆍ해지 가맹점수/등록 가맹점수+폐점ㆍ해지 가맹점수)은 9.9%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업종별로는 외식업 분야에서 폐점 및 해지 가맹점 수가 1만3329곳(11.1%)으로 가장 많았다.
문제는 앞으로다. 김영란법으로 매출이 쪼그라든 상황에서 최저임금 인상안이 현실화되면 폐업자 수는 갈수록 더 많아질 수 밖에 없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정부는 16일 내년도 최저임금을 7530원으로 전년비 16.4% 인상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이에 대한 지원 대책으로 ▲인건비 초과 인상분 지원 ▲30인 미만 사업체 소상공인ㆍ영세 중기 지원 ▲신용카드 수수료 부담 완화 ▲계약갱신청구권 확대 ▲불공정거래 관행 규제 강화 ▲의료비ㆍ교육비 세액공제 확대 등을 내놨다.
하지만 자영업자들은 정부의 지원대책이 알맹이가 없다고 주장한다. 정부가 발표한 최저임금 지원 대책이 실효성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대상으로 선정되는 것도 어려워 결국 줄폐업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을지로에서 인쇄업을 운영하는 B씨는 "정부가 업주의 인건비 부담 능력을 판단하는 기준과 지원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다"며 "정부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자영업자들이 속출할 것"이라고 성토했다. 명동에서 대형 고깃집은 운영하는 C씨도 "매출의 핵심이었던 중국인들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여파로 뚝 끊겼는데 높은 임대료에 10명이 넘는 직원들 월급까지 더 올려주게 되면 문을 닫을 수 밖에 없지 않겠냐"고 울분을 토했다.
프랜차이즈를 운영하는 D씨도 "2020년 최저임금 1만원 시대를 연다는 것인데, 심화되는 재정부담을 어떻게 감당할 지 모르겠다"면서 "일자리 안정자금에 대한 지원이 눈더미처럼 늘어날 수록 자영업자들에 지원이 고르고 분배되지는 못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임대료 부담이 가중되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내놓은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부담 완화를 위한 소상공인ㆍ영세 중소기업 지원대책'에 포함된 영세 임차인 보호 대책에 대한 우려도 가득한 상황이다. 정부는 임차인의 계약갱신청구권 행사 기간을 현행 5년에서 10년으로 연장하기로 했으며, 현 9%인 보증금ㆍ임대료 인상률 상한도 낮추기로 했다.
그러나 자영업자들은 역효과를 우려하고 있다. 임대료를 원하는 만큼 인상할 수 없게 된 임대인이 재임대 시점 때 임대료를 확 올리는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 주택 시장에선 1989년 주택임대차 보호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늘리자 같은 해 전국 전셋값이 17.5%, 다음해 16.7% 폭등했던 적이 있다.
특히 외식 자영업자의 경우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인상하면 종사자 8명 중 1명이 실직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한국외식산업연구원은 "외식업체들이 현재 인건비 비율을 유지한 상태에서 정부 계획처럼 2020년까지 매년 최저임금이 평균 15.7%씩 오르는 상황을 가정할 경우, 현재 외식업 종사자의 13%가 일자리를 잃게 된다"고 말했다. 현재 전국 69만여 곳의 외식업체에 210만명이 종사하고 있는데 일자리를 잃는 종업원은 2018년 10만명으로 시작해 2020년까지 총 27만여 명에 이를 것으로 연구원은 전망했다.
장수청 한국외식산업연구원 원장은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안의 적용 시기와 수위, 수용 능력에 대해 좀 더 면밀하고 다각적으로 살펴봐야 하며, 최저임금 인상분에 상응할 만큼의 지원책 마련도 필수"라고 강조했다.
이선애 기자 lsa@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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