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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입고 있던 옷을 선물한 '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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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입고 있던 옷을 선물한 '情' 송명견 동덕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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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몌별(袂別)'이란 말이 있다. 뜻이야 그냥 이별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선조들은 '소매 몌(袂)' 자와 '나눌 별(別)' 자를 씀으로써 '서로 옷소매를 붙잡고 놓지 못하는 안타까운 이별'이라는, 그냥 이별과는 차원이 다른 '가슴 아픈' 상황을 표현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입성은 자주 그렇게 사람의 간절한 마음이나 정을 표시하는 수단으로 등장한다.


넓은 축구장에서 마치 전쟁터의 적과 싸우듯 있는 힘을 다해 뛰던 선수들이 경기를 마치고 상대편 선수와 땀에 흠뻑 젖은 유니폼을 바꿔 입는 모습도 잔잔한 감동을 준다.

언젠가 공항 대합실에서 반백의 두 남자가 두 손으로 굳게 악수를 하더니 갑자기 서로 넥타이를 풀어 바꿔 매고는 끌어안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먼 길을 떠나 오래오래 헤어져 있어야 하는, 어쩌면 재회조차 기약 없는 이별인 듯 싶었다. 넥타이에 묻어있는 체취와 체온을 서로 간직하고자 했을 것이다. '몌별' 정도의 가슴 뭉클한 장면이었다.


그 정도는 아니지만 필자에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몇 해 전 겨울 블라디보스토크의 고려인들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곳에는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쫓겨갔다가 소련 붕괴 후 다시 연해주로 옮겨온 고려인들이 고생하고 있었다. 영하 40도의 맹추위 속에서 그들은 겹겹이 껴입었어도 옷이 더 필요한 상황이었다. 웬만한 더운 옷은 다 나누어주었다. 그러다 보니 막상 우리를 안내하던 선교사들에게는 줄 옷이 없었다. 그 곳을 떠나는 날, 우리는 강추위 속에 수고하는 선교사들을 두고 오는 안쓰러움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필자가 입은 따뜻한 옷은 그 곳 공항까지만 필요했다. 한국에 돌아가면 다시 사 입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필자는 공항 화장실에서 입고 있던 기모 바지를 벗어 공항까지 동행해 준 선교사에게 건네주었다. 입던 옷이라 미안하기도 했으나 그녀는 호의로 그 옷을 받아주었다. 몹시 기분이 좋았다. 필자의 체온을 느껴서였을까. 그 뒤로 우리는 매우 친해졌다.

문재인 대통령의 미국, 독일 등 해외 순방에 동행한 김정숙 여사가 남다른 '패션외교'로 눈길을 모으고 있다. 김 여사는 한국적 요소들을 살린 다양한 옷을 선보이며 호평을 받았다. 특히 돋보였던 대목은 방미 일정 중에 입고 있던 겉옷을 벗어 깜짝 선물한 이례적인 '정(情)' 표시였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김 여사는 워싱턴 주미대사관저에서 열린 전직 주한 대사부인들과 주한 미군 부인들의 모임인 '서울-워싱턴 여성협회' 간담회에 참석하던 중이었다. 이때 김 여사는 토머스 하버드 전 주한미국대사 부인인 조앤 하버드 여사가, 자신이 입고 있던 분홍색 겉옷을 칭찬하자 서슴없이 옷을 벗어 하버드 여사에게 선물해 주변을 놀라게 했다. 이 옷은 전통 누빔 장인인 김해자 여사가 한국의 전통 누빔 문화를 세계에 알려달라고 만들어 준 것이었다. 홍화물을 들여 분홍빛을 띠고, 안과 밖의 옷감이 달라 뒤집어서도 입을 수 있었다.


새 옷을 만들어 선물하는 경우는 종종 있다. 그러나 영부인이 외국 방문 중 입고 있던 옷을 벗어 깜짝 선물하고, 받는 쪽에서 이에 감동하는 일은 그야말로 없던 일이다. 입고 있던 입성을 통해 전해진 따뜻한 마음과 정이 보기에도 참 흐뭇했다. 입고 있던 옷을 벗어준 사람의 체온까지 전해졌기를 바란다.


송명견 동덕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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