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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여서문자와 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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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오상도 정치부 차장] 중국 후난성 융저우에는 '여서문자(女書文字)'라는 독특한 음절 문자가 존재한다. 어머니가 시집가는 딸에게, 큰 언니가 나이 어린 자매에게 전수했던 세계 유일의 '여성 전용' 문자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마치 자수를 놓듯 새기는 이 문자는 생김새가 특이하다. 700여개의 기호로 이뤄졌는데 점과 획, 기울기 등으로 미묘한 차이를 구분한다.

여성의 한자 사용이 금기시되던 이 지역에서만 무려 1000여 년 동안 요긴하게 쓰였다. 여성들은 가슴 한편에 쌓인 한(恨)을 이 문자를 통해 풀어놨다. 이 과정에서 묘한 동질감을 형성하면서 이를 자수 형태로 새겨 돌려보기도 했다. 여서문자에 담긴 내용도 여성들을 위한 '그들만의' 것이었다. 남성들의 눈을 피해 시집살이의 애환이나 딸을 시집보낸 슬픔, 딸이 사위와 백년해로(百年偕老)하기를 바라는 소망 등을 여서문자로 풀어냈다. 5자 혹은 7자의 시 형태로 손수건 등에 자수했다.


1930년대 일본의 중국 침략기에는 이 문자가 암호로 활용되는 것을 우려한 일제가 사용을 금지했다. 후난성 밖으로 그 존재가 알려진 것도 얼마 되지 않는다. 여성의 문맹률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효용가치가 감소했고, 어느 순간 자취를 감췄기 때문이다.

세상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건 1982년께. 중국 우한대의 한 연구진이 여서문자를 '문화 화석'으로 널리 소개하면서부터다. 지금은 중국 정부가 나서 학술용으로 보존하고 있다.


이 지역 여성들이 '침묵으로 말하는 법'을 터득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 본성인 소통을 위한 서툰 몸짓이 아니었을까. 지식을 소유하려는 욕구가 아닌 등허리 굽은 '어머니', '할머니'가 서로 마음 속 고뇌를 나누려던 몸짓 말이다.


이는 하나의 언어를 사용하면서 한글을 통해 담아내는 우리를 새삼 부끄럽게 만든다. 같은 말과 글을 사용하지만 소통을 위한 의지는 그 옛날 여인들만도 못하다는 소리를 들을 법하다.


최근 야당의 과도한 공직후보자 견제와 청와대의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임명 강행으로 불붙은 '불통 정국'을 보면 먹먹할 따름이다. 마주 달리는 두 진영은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은 모양새다.


사전에도 등장하지 않는 '협치'라는 단어가 횡행할 때부터 살짝 우려가 되긴 했다. 다시 정국이 교착되고 무엇 하나 대화로 해결되는 일이 없는, 과거로의 회귀가 걱정스러웠다.


프랑스의 새 대통령인 에마뉘엘 마크롱은 "정치가 바뀌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고 단언했다. 이 젊은 30대 정치인은 좌도 우도 아닌 신생 세력의 총선 압승을 이끌며 마법처럼 승승장구하고 있다. 프랑스 정치의 기적이라 부를 만하다.


기득권에 안주하는 정치는 미래가 없다. 더 이상 설 곳이 없어진다. 긴장하라 정치인들이여, 그리고 소통하라. 1000년 전 중국 대륙 어딘가에서 소통을 간절히 꿈꿨던 여인들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오상도 정치부 차장 sdo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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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도 기자 sdo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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