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경제단체 허니문이 실종돼
-전경련은 최순실로, 경총은 비정규직으로 정부에 비판받아
-경제와 일자리살리려면 정부와 경제단체간 협력 필수
[아시아경제 이경호 기자]문재인 대통령이 초대 내각의 국정기조로 정경유착 근절과 재벌개혁에 방점을 찍으면서 경제단체들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정경유착의 진원지라는 비판을 받으며 정부와 재계의 창구역할을 잃어버린데 이어 사용자측 입장을 대변해온 한국경영자총협회가 문 대통령의 핵심국정과제인 비정규직 대책을 두고 비판을 했다가 호된 비판을 받으면서 경제단체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4일 재계에 따르면 전경련은 재계의 본산, 경제단체의 '맏형' 노릇을 하다가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되면서 해체 여론에 직면하고 4대 그룹 등 주요 회원사가 줄줄이 탈퇴하면서 심각한 재정난을 겪고 있다. 회원사 규모도 531개에서 515개로 줄었고 희망퇴직으로 조직과 인력을 대폭 줄이고 쇄신에 나섰지만 전경련의 존재이유에 대해 여전히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다. 전경련은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에 참여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경련이 신자유주의, 우파, 보수진영에 가까웠다는 점에서 진보진영과 사이가 좋지 않아왔다.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인이었던 2013년 1월 인수위와 전경련간의 갈등이 대표적이다. 당시 1월 10일자 뉴욕타임스는 "대통령 당선 후 한국 기업 안심시키기"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전경련 김 모 상무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경제정책에 있어 대단히 위험할 수 있다. 경제체제의 급격한 변화를 요하고 있다. 인수위의 목표는 사회주의다"라는 내용의 발언을 한 것으로 보도했다. 파문이 확산되고 정순균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김 상무의 발언 내용은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정책기조와 대통령직 인수위의 정책방향을 심히 왜곡하는 것"이라며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김 상무는 뉴욕타임스와 인터뷰한 사실이 없고 사석에서도 정권인수위를 비난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논란이 식지 않자 전경련은 뉴욕타임스 기자를 통해 진위 여부를 재차 확인한 뒤 정정보도를 요구하는 한편 인수위에 대해선 물의를 빚은데 대해 강한 유감을 표시하는 등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전경련은 인수위에 보낸 공문에서 "새 정부와 재계가 마찰을 빚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국가경쟁력과 대외신인도에도 바람직하지 않다"며 "국민소득 2만달러시대와 동북아경제중심지화를 위해 정부와 힘을 모으겠다"고 밝혀 정부에 대한 협력의사도 분명히 했다. 이에 대해 인수위도 "전경련의 사과공문을 정중히 받아들이며 전경련의 '성의있는' 조치를 기대한다"고 밝혀 전경련의 해명을 수용하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인수위와 전경련은 갈등은 양측의 사과와 수용으로 봉합된듯 보였지만 이후 노무현정부가 출범한 이후에도 한동안 대기업정책과 노동정책, 조세정책 등을 두고 양측간의 신경전이 벌어진 바 있다.
전경련은 문 대통령과 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의 관계도 껄끄럽다. 문 대통령은 2012년 9월 민주통합당 대선후보로 확정된 직후 경제단체와 양대노총을 초청한 간담회를 주재하면서 전경련만 제외시킨 바 있다. 2015년과 2016년에는 전경련을 찾아가는 우(右)클릭 행보를 한 적도 있지만 잠시였다. 문 대통령은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를 맡고 있던 2015년 9월에는 당과 전경련이 남북경제교류 활성화를 주제로 마련한 간담회에 참석한 바 있다.
야당대표 자격으로 재벌ㆍ대기업 회장들의 모임인 전경련을 방문한 것은 문 대통령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현재 전경련은 문 대통령의 최우선 국정과제인 적폐청산의 대상으로 지목됐다. 문 대통령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의 '전경련 해체에 대한 대선주자 공개질의'에서 "전경련은 더 이상 경제계를 대표할 자격과 명분이 없다"고 했다. 허창수 전경련 회장이 문 대통령의 경남고 4년 선배이고 GS그룹 인사들도 경남고 출신이 많지만 이런 학연이 문 대통령에게 영향을 주지는 않을 가능성이 높다.
경총은 비정규직대책을 놓고 문재인정부로부터 호된 비판을 받으며 궁지에 몰렸다. 앞서 김영배 경총 부회장은 지난 25일 경총포럼 인사말에서"사회 각계의 정규직 전환 요구로 기업들이 매우 힘든 지경이다. 논란의 본질은 정규직·비정규직 문제가 아니라 대·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라고 먈했다.
그러자 문재인 대통령은 26일 "경총도 비정규직으로 인한 사회적 양극화를 만든 주요 당사자 중의 한 축으로서 책임감을 갖고 진지한 성찰과 반성이 먼저 있어야 한다"고 말했고, 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장도 "재계가 압박을 느껴야 한다"고 공개 기판했다. 결국 경총은 "정부 정책을 반대하려는 게 아니라 노사정이 힘을 합해서 일자리 창출과 비정규직 근로자의 처우 개선 등을 위해 노력하자는 뜻이었다"고 곧바로 해명했다. 이어 '비정규직 논란의 오해와 진실'이라는 책을 내려다가 발간을 취소했다. 지난 1일에는 한 언론에서 경총 실무팀이 작성하고 있던 내부문건이 문재인정부 정책을 반박하기 위한 경제단체의 자료로 알려지자 경총이 다시 해명에 나서면서 갈등국면이 지속되는 모양새다.
이경호 기자 gungh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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