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소연 기자]내년부터 로펌(법무법인)도 신탁상품을 판매하고 고객의 자산을 관리할 수 있게 된다. 신탁은 '믿고 맡긴다'는 뜻으로, 고객의 재산을 일정 기간 운용ㆍ관리해주는 상품이다. 국내 재산신탁 규모는 344조원에 달하지만 금전채권, 부동산담보신탁 등 단순 보관업무를 제외하면 실제 규모는 71조8000억원에 불과하다.
27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법무부 등 관계부처는 신탁 산업 개선을 위한 수차례 합동회의를 거쳐 신탁업제도 개편의 가닥을 잡았다.
금융위 한 관계자는 "상반기중 관계부처와 논의를 완료하고, 하반기 국회 통과를 거쳐 내년에는 시행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당초 병원(의료법인)도 치매요양신탁 등 의료목적과 유사한 신탁상품을 팔 수 있도록 할 계획이었지만 의료법 상 부대사업 용도 제한이 발목을 잡았다.
정부는 상속세제와 법률자문에 강점이 있는 로펌을 신탁업 확대에 적극 활용하기로 했다. 정부는 자본금과 금융전문인력 등 일정한 요건을 갖춘 로펌에 대해서는 유언대용신탁 등 신탁 상품을 판매할 수 있도록 법적 규제를 풀어주기로 했다.
유언대용신탁이란 전 재산을 신탁한 뒤 생전에는 본인을 위해, 사후에는 자녀나 배우자를 위해 자산을 운용하고 수익을 배분할 수 있는 신탁 방식이다. 정부는 이런 신탁업 규제 완화가 고령화 사회에서 은퇴 이후 삶을 대비할 수 있는 '히든카드'라고 보고 있다.
정부 한 관계자는 "신탁업 정비 과정에서 기존 금융권을 대상으로 신탁 상품 전수 조사에 나섰는데 금융회사서 판매하는 상품들은 기본적인 법률 자문 수준밖에 제공하지 못하는 맹점이 있었다"면서 "로펌에서 상속과 얽힌 복잡한 법률적인 문제와 재산 배분을 신탁이라는 제도를 통해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올초부터 고령화로 수요가 늘고 있는 신탁을 종합자산관리 수단으로 키우기 위한 신탁업법 제정작업에 착수했다. 2009년 자본시장법에 통합된 신탁업법이 8년 만에 다시 분리되는 것이다.
자본시장법에서는 신탁업을 은행ㆍ보험ㆍ증권사 등 금융회사가 겸업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로펌ㆍ병원 등은 신탁업을 할 수 없었고, 독립 신탁업자 출현 역시 어려웠다. 또 종합신탁업 인가를 받으려면 자기자본이 250억원 이상이 돼야 하는 등 진입장벽도 높았다.
새로 만들 신탁업법은 금전신탁 외에도 다양한 종합재산신탁을 활성화하고 새로운 신탁업자가 출현하도록 유도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유동화 전문법인, 부실채권관리신탁 전문법인 출현도 허용한다.
수탁재산의 범위도 자산(아파트담보대출 등)이 결합된 부채, 사업영업권, 담보권, 보험금청구권 등으로 확대된다. 현행법으로는 광고가 금지되지만 장기 재산관리신탁 등에 한해 광고 규제도 풀린다.
다만 정부는 불특정금전신탁의 경우 금융권 간 유ㆍ불리에 따라 이해대립이 첨예한데다 판매수익을 극대화하려는 경쟁이 생길 우려가 있어 허용하지 않기로 했다.
박소연 기자 mus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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