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일터삶터]야심적 투표

시계아이콘01분 33초 소요

[일터삶터]야심적 투표 이윤주 에세이스트
AD

'야심이 잠들어버리는 순간에만 나는 평온함을 맛본다. 그것이 깨어나는 순간 다시 불안이 엄습한다. 삶이란 야심의 상태이다. 굴을 파는 두더지도 야심에 가득 차 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오직 나 자신을 견딘다던, 허무의 철학자 에밀 시오랑은 말했다. 무엇을 이루어보겠다는 마음은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인간을 집요하게 추동한다. 추동되는 상태를 선호하고, 그 상태가 인간을 나아가게 한다고 보는 사람도 많지만, 시오랑은 아니었던 듯하다.


무엇으로부터도 추동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그 반대보다는 훨씬 자주 하는 사람으로서, 야심가들이 동네방네 제 야심이 진정(眞正)하다고 소리치는 계절에는 혐오감이 깊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특정한 야심을 맹렬히 지지한다. 저 야심이 진짜 야심이지. 그런데 반대쪽에서는 또, 저 야심을 믿었다가는 다 망한단다. 저 야심 말고, '저' 야심이어야 한단다. 사납게 대치하는 그들의 야심 또한 야심가의 그것 못지않다. 아무래도 평소보다는 추동되기를 선택하는 쪽이 훨씬 많은 것 같다. 그래서 좀 귀를 대고 들어보려고 하는데, 귀청만 떨어지고 뭘 들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나'의 야심이 세계를 (좋은 뜻에서) 엄청나게 바꿀 수 있다고는 아무래도 믿어지지 않는다. 조금은 바꿀지도 모르지만 그 '조금'은 어차피 세계가 크게 움직이지 않아도 그럭저럭 살 만한 사람들이 체감할 수 있는 정도일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입장에서는, 세상을 당장 바꾸겠다고 호언하는 야심가는 물론이거니와 그 야심에 열광하는 풍경도 뜨악할 수밖에 없다. 타인의 야심, 심지어 내 야심의 방향을 의심하지 않는 일이 가능한가?


말은 이렇게(!) 해도, 투표권이 주어진 이래 한 번도 그것을 포기한 적은 없다. 대단한 시민적 양심을 지니고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의 야심이 세계를 확 좋아지게 하기는 어려워도 확 나빠지게 하기는 쉬워 보였기 때문이다. 내 손을 떠났던 투표용지들은 적어도, 한 공동체의 리더가 마땅히 가져야 할 두려움에 일인분의 무게를 얹기 위해서지, 리더의 야심에 장단 맞추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세계를 나아가게 하는 건 야심 자체보다는, 야심과 야심 사이를 지나가는 어떤 조심스러운 마음가짐일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이를테면 낯선 장소에서 내게 길을 가르쳐주는 이를 진심으로 드높이는 마음, 군중 사이에서 불룩한 배낭을 가슴 앞으로 돌려 메는 마음, 이면지를 모으는 마음, 날카로운 물건은 손잡이 쪽으로 건네는 마음, 대접받지 않으려는 마음, 그러나 대접하려는 마음, 그런 마음가짐들의 합(合)에 가까운 것.

작년 이맘때 투표소에서 돌아오는 길에, 태어나 처음 보는 연보랏빛 꽃나무를 발견했었다. 도무지 어떤 색을 섞어야 저런 빛깔이 나올지 추측할 수도 없이 신비롭도록 황홀한 꽃나무였다. 5년 넘게 살아온 동네인데, 지나다니면서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니. 비록 또 당선되지 않은 후보와 또 원내에 진출하지 못한 정당을 찍긴 했으나 투표하러 나오지 않았다면 보지 못했을 테니 나름대로 투표의 성과라 여겼다. 또다시 아름다운 계절에 투표를 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이번에도, 모종의 성과가 있지 않을까. 있길 바란다. 야심을 품고 말았다. 다시 시오랑을 떠올려본다. '아무런 야심도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커다란 힘이며, 커다란 행운이다. 나는 그러려고 애쓴다. 그러나 그런 노력 또한 야심이리라.'


이윤주 에세이스트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놓칠 수 없는 이슈 픽

  • 25.12.0209:29
    자식 먹이고자 시도한 부업이 사기…보호망은 전혀 없었다
    자식 먹이고자 시도한 부업이 사기…보호망은 전혀 없었다

    "병원 다니는 아빠 때문에 아이들이 맛있는 걸 못 먹어서…." 지난달 14일 한 사기 피해자 커뮤니티에 올라 온 글이다. 글 게시자는 4000만원 넘는 돈을 부업 사기로 잃었다고 하소연했다. 숨어 있던 부업 사기 피해자들도 나타나 함께 울분을 토했다. "집을 부동산에 내놨어요." "삶의 여유를 위해 시도한 건데." 지난달부터 만난 부업 사기 피해자들도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었다. 아이 학원비에 보태고자, 부족한 월급을 메우고자

  • 25.12.0206:30
    "부끄러워서 가족들한테 말도 못 해"…전문가들이 말하는 부업사기 대처법 ⑤
    "부끄러워서 가족들한테 말도 못 해"…전문가들이 말하는 부업사기 대처법 ⑤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를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 보려고 한다. 전문가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확산하는 부업 사기를 두고 플랫폼들이 사회적 책임을 갖고 게시물에 사기 위험을 경고하는 문구를 추가

  • 25.12.0112:44
    부업도 보이스피싱 아냐? "대가성 있으면 포함 안돼"
    부업도 보이스피싱 아냐? "대가성 있으면 포함 안돼"

    법 허점 악용한 범죄 점점 늘어"팀 미션 사기 등 부업 사기는 투자·일반 사기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구제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업 사기도 명확히 전기통신금융사기(보이스피싱)의 한 유형이고 피해자는 구제 대상에 포함되도록 제도가 개선돼야 합니다."(올해 11월6일 오OO씨의 국민동의 청원 내용) 보이스피싱 방지 및 피해 복구를 위해 마련된 법이 정작 부업 사기 등 온라인 사기에는 속수무책인 상황이 반복되

  • 25.12.0112:44
    의지할 곳 없는 부업 피해자들…결국 회복 포기
    의지할 곳 없는 부업 피해자들…결국 회복 포기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들을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보려고 한다. 나날이 진화하는 범죄, 미진한 경찰 수사에 피해자들 선택권 사라져 조모씨(33·여)는 지난 5월6일 여행사 부업 사기로 2100만원을 잃었다. 사기를 신

  • 25.12.0111:55
    SNS 속 '100% 수익 보장'은 '100% 잃는 도박'
    SNS 속 '100% 수익 보장'은 '100% 잃는 도박'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들을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보려고 한다. 기자가 직접 문의해보니"안녕하세요, 부업에 관심 있나요?" 지난달 28일 본지 기자의 카카오톡으로 한 연락이 왔다.기자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

  • 25.12.0513:09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박수민 PD■ 출연 : 김용태 국민의힘 의원(12월 4일) "계엄 1년, 거대 두 정당 적대적 공생하고 있어""장동혁 변화 임계점은 1월 중순. 출마자들 가만있지 않을 것""당원 게시판 논란 조사, 장동혁 대표가 철회해야""100% 국민경선으로 지방선거 후보 뽑자" 소종섭 : 김 의원님, 바쁘신데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김용태 :

  • 25.12.0415:35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강전애 전 국민의힘 대변인, 김준일 시사평론가(12월 3일) 소종섭 : 국민의힘에서 계엄 1년 맞이해서 메시지들이 나왔는데 국민이 보기에는 좀 헷갈릴 것 같아요. 장동혁 대표는 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것이었다고 계엄을 옹호하는 듯한 메시지를 냈습니다. 반면 송원석 원내대표는 진심으로

  • 25.11.2709:34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11월 24일)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에 출연한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은 "장동혁 대표의 메시지는 호소력에 한계가 분명해 변화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또한 "이대로라면 연말 연초에 내부에서 장 대표에 대한 문제제기가 불거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동훈 전

  • 25.11.1809:52
    홍장원 "거의 마무리 국면…안타깝기도"
    홍장원 "거의 마무리 국면…안타깝기도"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마예나 PD 지난 7월 내란특검팀에 의해 재구속된 윤석열 전 대통령은 한동안 법정에 출석하지 않았다. 특검의 구인 시도에도 강하게 버티며 16차례 정도 출석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윤 전 대통령의 태도가 변한 것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관이 증인으로 나온 지난달 30일 이후이다. 윤 전 대통령은 법정에 나와 직접

  • 25.11.0614:16
    김준일 "윤, 여론·재판에서 모두 망했다" VS 강전애 "윤, 피고인으로서 계산된 발언"
    김준일 "윤, 여론·재판에서 모두 망했다" VS 강전애 "윤, 피고인으로서 계산된 발언"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미리 PD■ 출연 : 강전애 전 국민의힘 대변인, 김준일 시사평론가(11월 5일) 소종섭 : 이 얘기부터 좀 해볼까요? 윤석열 전 대통령 얘기, 최근 계속해서 보도가 좀 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국군의 날 행사 마치고 나서 장군들과 관저에서 폭탄주를 돌렸다, 그 과정에서 또 여러 가지 얘기를 했다는 증언이 나왔습니다. 강


다양한 채널에서 아시아경제를 만나보세요!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