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노미란 기자]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 후 미국은 자유무역에서 보호무역으로 기조를 수정, 세계 경제의 질서를 바꾸고 있다. 세계 최대 경제 대국 미국의 변화로 전 세계적으로 보호무역주의가 득세하고 무역협정이 크게 훼손될 위협에 놓여있다. 당장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과 한미자유무역협정(FTA),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흔들리고 있다. 중국은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배치에 맞서 한국에 대한 경제적 압박을 서슴지 않고 있다.
이렇듯 강력한 주요2개국(G2)의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국경제는 새로운 시장으로 적극 진출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그 대상은 거대 인구와 소비 시장을 가진 동남아가 첫손에 꼽힌다. 아시아 지역은 여전히 자유무역을 통해 창출할 수 있는 부가가치가 여전히 클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아시아 경제는 출범 1년을 맞이한 아세안경제공동체(AEC)의 성과와 각 국가의 경제 상황을 되짚어보며 자유무역의 효과와 아시아 국가의 잠재력을 재확인하고 한국과의 경제협력 진출 확대를 통한 신시장 발굴의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편집자주
#남태평양 보루네오 섬 한 쪽에 있는 작은 나라 브루나이는 지난 수년간 산림 보존 노력을 통해 산림 자원을 효과적으로 관리해오면서 목재 강국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브루나이가 1차 산업 산림에 머물지 않고 목재가공에 주력할 수 있었던 데에는 아시아 경제공동체 아세안(ASEAN) 회원국과의 합작 및 협력을 통해 키워낸 목재 생산기업 트리선(Tri-Sun Sdn Bhd)의 성공이 자리 잡고 있다. 1987년 목재 배달로 시작한 트리선은 현재 아세안 전역에 문짝, 가구 등을 공급하는 명실상부 목재 생산 전문기업으로 탈바꿈했다. 트리선에 목재제품을 공급받는 아세안 국가의 경험, 전문지식 등이 트리선을 전 세계를 상대로 경쟁력을 갖게 만든 것이다.
브루나이의 목재생산기업은 아세안 회원국들이 꿈꾸는 하나의 거대 공동체에 대한 구상의 단편적인 예에 지나지 않는다. 브루나이·캄보디아·인도네시아·라오스·말레이시아·미얀마·필리핀·싱가포르·태국·베트남 등 아세안 회원국 10개국 아세안 회원국들은 효율적인 경제 통합을 촉진하고자 지난 2015년 말 아세안경제공동체(ASEAN Economic Community·AEC)를 출범시켰다.
AEC는 2015년 기준 6억2900만명의 인구가 모여, 중국과 인도에 이어 세계에서 3번째로 많고, 국내총생산(GDP)으로는 세계 6위, 상품무역 규모로는 4위에 해당하는 거대한 경제 공동체다. 2015년 한 해에만 1200억달러의 외국인 직접투자(FDI)가 이 지역으로 흘러들어왔다. 2025년 달성할 청사진으로 '높은 수준의 통합과 유기적인 경제' '경쟁력 있고 역동적인 경제' '연계성 및 부분 간 통합 강화' '회복력 있고 포용적인 사람 중심의 공동체' '글로벌 아세안' 등을 발표하고 통합에 가속도를 붙이고 있다.
특히 이 지역은 젊은 인구가 많고 성장 잠재력이 커 전 세계의 투자자들에게 매력적인 시장으로 평가받는다. 아세안의 전체 교역량은 경제공동체 건설이 추진된 2006~2011년 매우 빠르게 증가했고 세계 전체 교역량 대비 비율 또한 2006년의 5.6%에서 2014년 6.8%로 증가했다. 아세안으로 향한 외국인 직접 투자도 크게 증가했다. 외국인의 아세안 직접 투자는 2003년 293억달러에 불과했지만 2014년에는 4배나 증가한 1361억8000만달러를 기록했다.
무역 증대와 외국인 직접투자 증가는 아세안이 높은 경제 성장률로 이어졌다. 아세안의 연간 경제성장률은 2006년 이후 세계 금융 위기가 닥친 2009년을 제외하고는 5%대를 지속했는데 2000년 이후 5% 이상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한 곳은 아세안과 중국, 그리고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 지역뿐이다.
아세안 지역이 한국의 주요 무역 상대국이며 무역 투자국이라는 점에서 이 지역 통합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한국에서 생산된 부품으로 완제품을 만드는 생산 기지가 아세안이며, 아세안 길거리에서 자동차와 휴대폰 등 한국산 제품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동남아지역은 2016년 말 기준 평균 한국 전체 수출의 27.2%를 차지하며,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비중을 차지했다.
한국과 아세안 간 무역량의 증가 속도도 놀랄 만큼 빠르다. 2000년 한국의 대(對)아세안 무역은 수출 201억달러, 수입 159억달러에 불과하였으나, 2010년에는 수출과 수입이 각각 532억달러와 441억달러로 증가했고, 2014년에는 846억달러와 534억달러로 각각 크게 증가했다.
아세안이 한국의 주요 무역 흑자 발생지역이라는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한국의 대 아세안 무역은 2000년부터 계속 흑자를 유지했는데 그 흑자 규모는 2000년 5억달러에서 2010년에는 91억달러, 2014년에는 312억달러로 크게 증가했다.
또한 한국수출입은행 해외투자통계에 따르면 같은 기간 동안 한국 해외직접투자의 15%를 차지하여 북미의 21%에 이은 2위 해외 투자국이기도 하다. 더불어 한국 전체 공적개발원조의 30%를 차지하여 가장 많은 ODA 지원이 이루어지는 곳인 동시에 한국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해외 방문지다.
올 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촉발한 보호무역기조가 아세안 통합에 주목받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후 사흘 만에 캐나다·멕시코와의 다자무역협정인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나프타) 재협상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를 위한 행정명령에 서명하며 보호무역주의를 한층 강화하고 있다.
다만 출범한 지 1년여밖에 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AEC 회원국은 각기 다른 경제 성장속도와 상황으로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메콩 선도 국가군인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중간제조업 경쟁국가군인 태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필리핀, 고소득 경제 국가군인 싱가포르 말레이시아로 분류되고 있다. 이번 기획에서는 단일생산기지와 단일소비시장을 추구하면서도 국가적 특색을 유지하는 AEC 회원국을 들여다보며 한국이 나아가야 할 길을 찾아본다.
노미란 기자 asiaro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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