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몰·호텔·식당·골프장 등 사용 가능처 매출 줄줄이 깎이는 와중에 '이상 호조'
지난해 청탁금지법 시행 후 올해도 기업들 여전히 많이 찾는 것으로 전해져
[아시아경제 오종탁 기자] '백화점 상품권'으로 통하는 유통 대기업 상품권이 소비 한파 속에서도 매출 호조를 이어가고 있다.
29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기준 전년 동기 대비 롯데 상품권은 10.7%, 현대 상품권은 5.3% 많이 팔렸다. 신세계는 공식적으로 수치를 내진 않지만 역시 상품권 매출이 증가세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 관계자는 "쇼핑, 호텔 숙박, 외식, 골프·레저 등 다양한 곳에 쓸 수 있는 사용 편의성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찾는 것 같다"며 "최근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손쉽게 구매하는 모바일 상품권 이용객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거론된 사용 가능처들은 모두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사드), 고물가 등 동시다발 악재에 불똥을 맞으며 고전하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 2일 발표한 '산업활동동향'을 보면 지난 1월 대형마트, 백화점 등 전통 유통채널들 매출은 전달보다 줄줄이 감소했다. 대형마트가 지난해 12월보다 7% 줄어 가장 감소율이 높았고, 승용차 및 연료소매점(-6.7%), 전문소매점(-2.8%), 백화점(-2.5%) 등도 사정이 악화했다. 1월 설 연휴 기간 '청탁금지법 특선' 저가 선물세트가 많이 팔려 명절 특수가 예전만 못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
전체 소매판매는 전달 대비 2.2% 감소하며 3개월째 마이너스 행진이었다. 소매판매는 지난해 11월 0.3%, 12월 0.5% 줄어든 데 이어 올 1월에는 감소 폭이 4배 가까이 커졌다. 또 소매판매가 3개월 이상 연속으로 줄어든 것은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 8월~2008년 12월 이후 처음이다.
청탁금지법, 고물가 등에 가뜩이나 안 좋던 소비는 지난달 말 롯데그룹과 국방부의 사드 부지 교환 계약 체결 이후 더욱 쪼그라들었다. 중국 정부가 이달 15일부터 자국 여행사들의 한국 관광 상품 판매를 금지하면서 여행사, 호텔, 면세점, 식당 등은 직격탄을 맞았다
상황이 이런데도 올해 상품권 판매가 '이상 호조'를 나타내는 것은 기업들의 청탁금지법 대응과 맞닿아 있다는 분석이 많다. 당초 유통업계는 지난해 9월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상품권 판매도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뚜껑을 열어보니 기업들의 상품권 구매가 늘며 판매 위축 상쇄를 넘어 신장이라는 결과를 이끌었다.
지난해 10∼12월 법인카드로 백화점 상품권을 결제한 금액은 1년 전보다 20.5% 늘었다. 같은 기간 개인 신용카드로 결제한 백화점 상품권 구매액이 1.5% 늘어난 것과 비교해 큰 증가 폭이다. 기업의 백화점 상품권 구매 열기는 올해 들어서도 여전한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올해 설 연휴에는 백화점의 선물세트 매출액이 줄어든 반면 상품권 매출액은 증가했다.
기업들은 법인카드를 접대비 결제에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하게 된 만큼 액면가의 95% 이상을 현금화할 수 있고, 누가 어떻게 쓰는지 파악하기 어려운 상품권 이용을 늘리는 것으로 파악된다. 경우에 따라 청탁금지법상 경조사비·강사료·식사 접대비 제한 등을 지키면서 추가로 상품권을 제공하는 탈법이 이뤄졌을 여지도 있다.
오종탁 기자 tak@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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