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철응 기자]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걸어도 걸어도’는 상실에 대해 이야기한다. 15년 전에 장남은 물에 빠진 소년을 구하고 자신은 목숨을 잃었다. 그는 부재하지만 가족의 중심에 있다. 남은 아들과 아버지 사이에는 장남의 빈 자리가 있고, 그들은 결국 건너가지 못한다.
가족의 갑작스런 죽음이 남긴 공간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채워지지 않고 오롯이 남아있기 마련이다. 그 채울 수 없는 안타까움은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은 무뎌지겠지만 결코 사라지지는 않는다. 아니 어쩌면 무뎌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색깔로 변해갈 뿐인지도 모른다.
살아있는 사람들은 달라지지만 죽은 이는 불변이다. 열등감이거나 혹은 미안한 감정들은 회복될 길을 찾을 수 없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장남이 구했던 소년의 방문과 그 이후였다. 어른이 된 그는 과체중 뚱보이며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알바’로 전전하고 있다. 은퇴한 동네 의사인 아버지는 사회적 성공과 보람을 중요하게 여긴다. 아버지는 “저런 놈 때문에 내 아들이…”라며 노골적인 비하의 감정과 회한을 드러낸다.
어머니는 극진하고 친절하게 그를 대한다. 하지만 집을 찾아오는 일이 그에게 얼마나 고통스러울지를 짐작하는 아들은 어머니에게 이제 그만 오도록 하는 게 어떠냐고 한다. 어머니의 얼굴은 무섭게 일그러진다. 벌써 잊어서는 안 된다고, 그 정도는 해야 한다고. 어머니는 그 나름의 복수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집으로 날아들어온 나비가 죽은 아들이라고 믿기도 한다. 가늠할 수 없는 슬픔의 심연을 보여주는 듯 했다.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타버린 가슴.
어머니를 연기한 배우 기키 기린은 이미 배역을 맡기로 했던 배우가 아니라 자신이 가장 적합하다고 강력히 요구해 관철시켰다고 한다. 영화를 보면 왜 그랬는지 알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세월호는 불로 지지는 듯한 상처로 남아있다. 어떤 사람들은 숨이 차는 듯한 먹먹함에 세월호를 입에 올리는 것조차 버거워 했다. 자식을 떠나보낸 부모들의 슬픔은 바다를 이뤘다. 사죄와 위로 대신 은폐와 외면의 화살이 날아가기도 했다. 유족들은 길에서 울어야 했다.
수면 위로 올라온 세월호가 상처를 달래는 시작이 되길 바란다. “이유나 좀 알자”라는 말이 이다지도 절실할 수 있을까. 바다 속에 잠들어있던 세월호가 이제 진실을 하나씩 풀어놓았으면 좋겠다. 한 희생자 어머니가 사람들에게 했던 말이 떠오른다. “가족들끼리 많이 사랑하세요. 우리는,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간들을 살고 있으니까요.” 또 한 번 억장이 무너지는, 4월이 온다.
박철응 증권부 차장 her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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