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으로, 특검으로 그동안 권력에 취해있던 부나방들이 불빛에 드러난다. 권력이 부르니 대학에서, 토굴에서, 로펌에서 튀어나와,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는 속물이 되었다. 20년, 30년 전 인물인 줄 알았던 올드보이들도 불러만 주면 충성경쟁을 벌인다. 더 이상 받아줄 곳 없는 몸 써주니 고마워서, 경로우대를 받을 생각도 없다. 출세욕으로, 권력욕으로 꽉 차 여백이 없다.
흥미로운 인물이 있다. 우리나라를 방문해 조깅바람을 일으켰던 독일의 요시카 피셔다. 그는 녹색당을 일구어 연립정권의 파트너가 되었다. 기초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지만, 당대 가장 인기가 많은 정치인이었다. 유감스럽게도 그의 외무장관 시절 미국의 대통령은 부시였다. 그가 은퇴하고 나서 얼마 있어서야 지겨운 부시의 시대가 끝나고 오바마가 당선되었다. 독일의 아나운서가 미국의 대통령 선거 소식을 전하면서 피셔에게 물었다. 이제 코드가 맞을테니 다시 정치 일선에 나서지 않겠느냐고. 피셔는 일언지하에 거부했다. 새로운 사람이 맡아야 한다는 것이다. 멋있다.
한국의 세태와 요시카 피셔 하나만을 비교하는 것은 사실 불공평하다. 누구도 쥐고 있는 권력을 놓기는 어렵다. 원숭이도 그렇다. 상자 안에 조그만 구멍을 뚫어놓고 과일을 넣어두면 원숭이가 과일을 주먹에 쥐고 놓지를 않아 잡히고 만다는 것이다. 권력에 대한 탐욕이 넘치면 부패로 이어지고, 그 썩은 냄새를 본인만 맡지 못하여 파멸로 이어진다.
사람도 그렇다. 사마천의 사기에 잘 나온다. 필자가 읽은 바로는, 사기에 나오는 인물 중에 자발적으로 권력을 놓은 인물은 '범려' 하나뿐이다. 그는 월 왕 구천을 모시고 천하를 도모했다. 당시의 고사에서 유래한 사자성어가 오월동주, 와신상담, 권토중래, 서시빈목, 토사구팽 등이다. 그러나 그는 대업을 이룬 후 은거한다. 구천에 대해 평하기를, 고난은 같이할 수 있어도 영화를 함께 누릴 수 없는 상(相)이라 하였다. 범려는 뜻을 같이했던 문종에게도 몸을 피하라고 권유했지만, 문종은 이를 듣지 않고 죽임을 당한다. 수백 년 후 이 이야기를 잘 아는 한신도 똑같이 토사구팽의 신세가 된다.
권력욕은 일신의 안위에 그치지 않는다. 헌법상의 통치구조, 즉 지배체제도 그 자체가 아니라 인간의 권력욕이 문제이다. 우리 대통령제는 무소불위의 한 인물을 중심으로 하는 정부형태이다. 이번 정권에서 보았듯이 대통령 한 인물을 떠받치고, 그로써 먹고 사는 사람으로 가득 차 있는 한, 권력의 남용과 부패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최근 입에 오르는 이원집정부제 내지 의원내각제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방식의 권력 나눠먹기 역시 권력욕이 걸림돌이다. 부여된 권력을 100% 또는 그 이상 행사하려는 사람들이 버티고 있는 한, 타협할 여지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어지러운 시대에는 하벨(Havel)과 같은 인물이 아쉽다. 하벨은 작가로서 프라하의 봄을 거치고, 20년 후 벨벳혁명으로 민주화된 체코슬로바키아, 그리고 다시 슬로바키아와 분리된 체코의 대통령이 되었다. 많은 파란 속에 용기와 절제를 실현하면서, 그는 정치가 도덕에서 출발한다고 보았다. 무력한 자가 저항하려는 기운과 진실의 편에 서는 힘, 스스로 책임을 지는 용기가 부조리한 시대에 필요한 정치도덕이라 하였다.
그동안 박-최 국정농단에 스스로 책임지는 정치인이 없고, 학문은 진실을 외면했다. 이대의 파행적 학사운영을 바로잡은 것은 순응할 수밖에 없었던 학생들이었다. 탄핵은, 손에 들 것이라고는 촛불밖에 없었던 광장의 기운으로 이루어냈다. 반면에 그들은 욕망으로 스스로를 태웠다. 추하다. 권력에도 여백의 미학이 필요하다.
김환학 서울대 행정연구소 특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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