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어져서 무릎을 다치고 난 뒤
무릎을 편애하기 시작했다
무릇 무릎이라 하면
기어서라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아픈 무릎이라도 사용하지 않으면
무르팍이라고
부르기 어렵다
불쑥 솟아난 돌의 미간
서걱거리는 잎을 달고 꼼짝 않고 서 있던
마가목 나동그라진다
나는 엎어져서 깨진 무릎을 들여다본다
찌륵거리며 건너온다
그만 저곳으로 갔던 게 아니다
아직 마가목은 파르스름 흠칠대는 기류를 흘려보내고 있다
귀뚜라미 수염 같은
가슬가슬한
귀뚫이의
마가목 가지는 하나도
헐거워지지 않았다
흐트러지지 않았다
어떻게든 철제 난간에 저를 뻗어
걸치고 있다
무릎이 무릇 무르팍이 되기까지
콱 힘주어 일어서기까지
■ '무르팍'은 '무릎'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그러니 가급적 사용하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 그런데 꼭 그래야 하나 싶기도 하다. 나는 '무릎'이라는 단어도 참 좋아하지만 '무르팍'이라는 말이 왠지 더 정겹다. 흔히 사용해서이기도 하겠지만 어떤 사연이 숨어 있을 듯해서다. 예컨대 시에도 적혀 있듯이 '무르팍'에는 넘어져서 무릎을 다쳤던 기억이 아리게 남아 있다. 그뿐인가. 할머니가 '어이구, 내 새끼' 그러면서 호호 불어 가며 옥도정기를 발라 주던 그 따뜻한 봄날도 무르팍의 주름 속에는 살뜰히 새겨져 있지 않은가. 그런 쓰린 상처들의 힘으로, 그런 상처들을 보듬어 주던 다정한 마음들로 무릎은 "무릇 무르팍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든 철제 난간에 저를 뻗어" 이미 잘린 남은 생을 "걸치고 있"는 마가목처럼 "기어서라도 앞으로 나아가" 보자. "콱 힘주어" 다시 일어나 보자.
채상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