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베이징=김혜원 특파원]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 피살 사건을 계기로 북중 관계가 꽁꽁 얼어붙어 양국 정상회담 가능성이 더 낮아졌다고 니혼게이자이 신문이 17일 보도했다. 김정은 집권 후 중국 국가주석과의 회담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신문은 북중 관계에 정통한 복수의 소식통의 말을 인용, "중국 정부의 보호 아래 있는 김정남이 말레이시아 공항에서 피살된 것은 중국과 김씨 형제의 복잡하게 얽힌 관계 때문"이라며 "김 위원장은 김정남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을 싫어했다"고 전했다.
김정남은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 시절 중국 공산당 고위 간부의 2세들과 폭 넓게 교류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김 위원장이 사망하고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체제가 들어서면서 김정남에 대한 특별 대우도 약해졌다고 한다.
김정남의 고모부 장성택이 처형된 이후 중국이 김정남과 본격적으로 '거리두기'에 나섰다는 분석도 있다. 최근 들어 중국이 아닌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에서 김정남 목격설이 주로 불거진 점과 피살 당시 경호가 허술했던 점 등이 이를 뒷받침한다는 것이다. 김정남은 장성택과 함께 해외 비자금 조달, 무기 거래, 도박 사이트 개설, 해킹 등 북한의 각종 사업에 관여하면서 마카오를 자금 세탁의 거점으로 활용해 왔다.
중국은 이번 사건의 불똥이 튀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는 분위기다. 중국 외교부는 김정남의 가족을 보호하고 있는지 확인 요청에 '모르쇠'로 일관하며 조선(북한)은 우호적 이웃나라로 양국은 선의와 우호의 전통이 있다면서 북중 관계 악화 가능성을 차단하는 데 급급해했다. 김정남과 그의 가족이 중국 정부의 신변 보호를 받는 것으로 알려진 상황에서 김 위원장이 피살 사건의 배후로 지목되는 데 큰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번 사건은 특히 북한의 탄도미사일 도발과 겹쳐 북중 관계는 당분간 개선의 여지가 불투명하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김정남이 베이징이나 마카오가 아닌 말레이시아에서 피살된 것은 중국과의 결정적인 대립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배려였을 수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중국 카네기·칭화센터의 외교 전문가인 자오 퉁 박사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를 통해 "만약 이번 암살이 김 위원장의 지령에 따른 것으로 확인될 경우 중국의 권위에는 나쁜 소식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정은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정권을 지키겠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조지 W 부시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아시아 정책 고문을 지낸 폴 헤인리도 "김정남 암살은 최근 있었던 북한의 미사일 시험 발사보다 중국에 훨씬 더 큰 타격"이라고 말했다. 김정남이 김일성 일가 중 북한이 개방과 경제 개혁에 나서야 한다는 중국의 견해에 동의한 유일한 인물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고 FT는 덧붙였다.
베이징 김혜원 특파원 kimhy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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