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초동여담]전복의 가치

시계아이콘01분 39초 소요

[초동여담]전복의 가치
AD


진시황과 조조는 난세를 평정했다는 것 말고 공통점이 하나 더 있다. 둘 다 전복을 좋아했다. 없어서 못 먹지, 누군들 귀한 전복 좋아하지 않을까 싶지만 황제 정도 되는 사람들이 챙겨 먹은 것은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식상하지만 영양을 먼저 들여다보면 전복은 지방이 적고 단백질은 풍부하다. 또 비타민, 칼슘, 타우린 등의 함유량이 높다. 게다가 암 치유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후코이단 성분이 함유돼 있고, 결정적으로 정력에 좋다는 아르기닌도 들어있다. 그러니 오래 살며 두고두고 정력을 뽐내고 싶었을 황제들이 즐겨 찾을 수밖에. 전복을 '패류의 황제'라고 하는데 맛과 영양이 황제급이라는 것뿐만 아니라 황제들의 사랑을 받았던 것도 이렇게 불리는 데 한몫 했을 것만 같다.

하지만 전복의 존재는 황제의 시대를 앞선다.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화석 등을 토대로 볼 때 지금과 같은 전복이 출현한 때는 1억 년 전이라고 한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등장한 300만 년 전 전복은 이미 먹을 만 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어쩌면 공룡들도 일찍이 그 효능을 몸소 체험하고 소소하게 간식으로 즐겼는지도 모른다.


이런 유구한 역사에도 불구하고 전복이 우리 식탁과 가까워진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패류의 황제라는 별호에 걸맞게 가격이 비쌌기 때문이다. 과거엔 생산량이 많지 않은데 정력 챙기는 왕들의 등쌀에 전복 가치가 천정부지 치솟았을 것이다. 공물로 바칠 전복을 따야하는 고역에 대한 기록이 여러 문헌에 남아 있을 정도다. 제주에서 전복을 따는 해남 '포작'이 공출의 가혹함을 피하기 위해 뭍으로 탈출하는 사례도 있었다고 한다. 근대에 들어서도 전복은 해녀들이 채취하는 해산물 중 가장 비싼 값을 받았다. 그러니 시중에서 큰맘 먹고 전복죽을 사 먹으려고 해도 전복 살점 찾기가 쉽지 않은 희멀건 쌀죽 구경밖에 할 수 없었다.

전복을 서민들도 즐겨 먹을 수 있게 된 것은 2000년대 들어 대량 양식으로 생산량이 급격하게 늘면서부터다. 생산량이 늘어 가격이 다소 떨어 졌다고 그 가치가 하락한 것은 아니다. 공들여 양식한 전복을 세심하게 손질해 음식을 하는 정성이 과거 왕에게 진상할 때와 다르지 않다면 말이다.


새해 들어 그런 마음으로 전복을 손질해 죽을 쑬 일이 있었다. 전복죽을 준비하려면 제주도에선 '게웃'이라고 하는 내장이 손상되지 않게 껍데기에서 살을 떼어 내는 작업을 먼저 한다. 다음에 전복 살을 잘 씻은 뒤 저며 듬뿍 넣고, 잘 다진 내장과 함께 죽을 끓인다. 쌀이 눌어붙지 않게 계속 저으면서 쫄깃한 식감을 위해, 또 씁쓸한 맛이 지나치게 배지 않게 전복 살과 내장을 딱 적당한 때 넣어줘야 한다.


이렇게 끓인 죽을 진상하는 마음으로 아내와 나눠 먹었다. 죽 한 그릇 달랑 내놓기 머쓱해 새해에는 건강하자는 덕담을 곁들였다. 한 숟가락 듬뿍 떠 입에 넣으니 전복 내장 고유의 감칠맛이 입맛을 돋우었다. 내장이 가지고 있는 짭조름함 덕분에 간이 딱 맞아 다른 반찬에 손이 가지 않았다. 아끼지 않고 넣은 덕에 자주 씹히는 전복 살이 입안에 감기는 맛은 든든했다. 언론인 홍승면 선생은 자신의 음식 칼럼 '백미백상'에 전복에서는 우아한 맛이 난다고 썼다. 이 전복죽 한 그릇에 그게 뭔지 알 것만 같았다. 하긴 누군가를 위해 정성 들여 한 음식의 가치는 다 그럴 것이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놓칠 수 없는 이슈 픽

  • 25.12.0209:29
    자식 먹이고자 시도한 부업이 사기…보호망은 전혀 없었다
    자식 먹이고자 시도한 부업이 사기…보호망은 전혀 없었다

    "병원 다니는 아빠 때문에 아이들이 맛있는 걸 못 먹어서…." 지난달 14일 한 사기 피해자 커뮤니티에 올라 온 글이다. 글 게시자는 4000만원 넘는 돈을 부업 사기로 잃었다고 하소연했다. 숨어 있던 부업 사기 피해자들도 나타나 함께 울분을 토했다. "집을 부동산에 내놨어요." "삶의 여유를 위해 시도한 건데." 지난달부터 만난 부업 사기 피해자들도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아이 학원비에 보태고자, 부족한 월급을 메우고

  • 25.12.0206:30
    "부끄러워서 가족들한테 말도 못 해"…전문가들이 말하는 부업사기 대처법 ⑤
    "부끄러워서 가족들한테 말도 못 해"…전문가들이 말하는 부업사기 대처법 ⑤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를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 보려고 한다. 전문가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확산하는 부업 사기를 두고 플랫폼들이 사회적 책임을 갖고 게시물에 사기 위험을 경고하는 문구를 추가

  • 25.12.0112:44
    부업도 보이스피싱 아냐? "대가성 있으면 포함 안돼"
    부업도 보이스피싱 아냐? "대가성 있으면 포함 안돼"

    법 허점 악용한 범죄 점점 늘어"팀 미션 사기 등 부업 사기는 투자·일반 사기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구제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업 사기도 명확히 전기통신금융사기(보이스피싱)의 한 유형이고 피해자는 구제 대상에 포함되도록 제도가 개선돼야 합니다."(올해 11월6일 오OO씨의 국민동의 청원 내용) 보이스피싱 방지 및 피해 복구를 위해 마련된 법이 정작 부업 사기 등 온라인 사기에는 속수무책인 상황이 반복되

  • 25.12.0112:44
    의지할 곳 없는 부업 피해자들…결국 회복 포기
    의지할 곳 없는 부업 피해자들…결국 회복 포기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들을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보려고 한다. 나날이 진화하는 범죄, 미진한 경찰 수사에 피해자들 선택권 사라져 조모씨(33·여)는 지난 5월6일 여행사 부업 사기로 2100만원을 잃었다. 사기를 신

  • 25.12.0111:55
    SNS 속 '100% 수익 보장'은 '100% 잃는 도박'
    SNS 속 '100% 수익 보장'은 '100% 잃는 도박'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들을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보려고 한다. 기자가 직접 문의해보니"안녕하세요, 부업에 관심 있나요?" 지난달 28일 본지 기자의 카카오톡으로 한 연락이 왔다.기자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

  • 25.12.0513:09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박수민 PD■ 출연 : 김용태 국민의힘 의원(12월 4일) "계엄 1년, 거대 두 정당 적대적 공생하고 있어""장동혁 변화 임계점은 1월 중순. 출마자들 가만있지 않을 것""당원 게시판 논란 조사, 장동혁 대표가 철회해야""100% 국민경선으로 지방선거 후보 뽑자" 소종섭 : 김 의원님, 바쁘신데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김용태 :

  • 25.12.0415:35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강전애 전 국민의힘 대변인, 김준일 시사평론가(12월 3일) 소종섭 : 국민의힘에서 계엄 1년 맞이해서 메시지들이 나왔는데 국민이 보기에는 좀 헷갈릴 것 같아요. 장동혁 대표는 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것이었다고 계엄을 옹호하는 듯한 메시지를 냈습니다. 반면 송원석 원내대표는 진심으로

  • 25.11.2709:34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11월 24일)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에 출연한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은 "장동혁 대표의 메시지는 호소력에 한계가 분명해 변화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또한 "이대로라면 연말 연초에 내부에서 장 대표에 대한 문제제기가 불거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동훈 전

  • 25.11.1809:52
    홍장원 "거의 마무리 국면…안타깝기도"
    홍장원 "거의 마무리 국면…안타깝기도"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마예나 PD 지난 7월 내란특검팀에 의해 재구속된 윤석열 전 대통령은 한동안 법정에 출석하지 않았다. 특검의 구인 시도에도 강하게 버티며 16차례 정도 출석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윤 전 대통령의 태도가 변한 것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관이 증인으로 나온 지난달 30일 이후이다. 윤 전 대통령은 법정에 나와 직접

  • 25.11.0614:16
    김준일 "윤, 여론·재판에서 모두 망했다" VS 강전애 "윤, 피고인으로서 계산된 발언"
    김준일 "윤, 여론·재판에서 모두 망했다" VS 강전애 "윤, 피고인으로서 계산된 발언"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미리 PD■ 출연 : 강전애 전 국민의힘 대변인, 김준일 시사평론가(11월 5일) 소종섭 : 이 얘기부터 좀 해볼까요? 윤석열 전 대통령 얘기, 최근 계속해서 보도가 좀 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국군의 날 행사 마치고 나서 장군들과 관저에서 폭탄주를 돌렸다, 그 과정에서 또 여러 가지 얘기를 했다는 증언이 나왔습니다. 강


다양한 채널에서 아시아경제를 만나보세요!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