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28일 설을 맞아 수많은 성묘객들이 깊은 산 속 조상님의 묘지를 방문한다.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멧돼지다. 한 겨울에 왠 멧돼지 걱정이냐고? 그렇지 않다. 멧돼지는 특히 설을 전후로 한 12월부터 1월 사이에 조심해야 한다.
▲12~1월 교미기 된 멧돼지 '물불' 안 가린다
설을 전후로 한 12월부터 1월 사이에 교미기를 맞는 멧돼지들은 1년생 수컷들이 세력권을 형성하는 데, 한참 혈기왕성한 상태에서 독립한 수컷들이 떠돌아 다니다가 등산객ㆍ성묘객들과 마주칠 경우 흥분해 공격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최근 야간 등산객들에게 멧돼지 주의보를 발령하기도 했다. 특히 지난해부터 전국을 휩쓸고 있는 조류 인플루엔자(AI)로 인해 전국 수렵장에서 AI 방재를 위해 야생동물 수렵을 금지하는 바람에 멧돼지 개체수가 늘어날 전망이어서 위험이 더 커졌다.
실제 지난해 12월3일 강원도 삼척시 가곡면에서 50대 김모씨가 멧돼지의 공격을 받아 사망했다. 평소처럼 집 앞 야산에 약초를 캐러갔다가 멧돼지에게 다리를 받힌 후 동맥 파열을 당했다. 부인의 연락을 받은 119 구조대원들이 산 속 깊이 들어가 김씨를 구조해 병원에 이송했지만 손을 쓸 수가 없는 상태였다. 이 곳에선 1년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2015년 12월15일 이웃 마을 주민 2명이 멧돼지떼의 습격을 받아 1명이 숨지고 1명이 크게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급박한 구조 요청을 받고 달려간 주민들은 180kg이 넘는 멧돼지 6마리가 피투성이가 된 사람들을 공격하는 것을 보고 경악했다. 이후 대대적인 멧돼지 소탕 작전을 펼쳐졌지만 소용이 없었다. 주민들은 요즘 '살인멧돼지'의 공포에 떨고 있다.
▲도시·농촌 안 가리는 '살인멧돼지'
이같은 멧돼지의 공포는 도시와 농촌을 막론하고 심각해지고 있다. 서울 시내도 최근 들어 해마다 멧돼지의 도심 출몰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16년 11월까지 총 1331건의 멧돼지 출몰 신고가 접수됐다.
2011년 43건 2012년 56건에서 2013년 135건, 2014년 185건, 2015년 364건, 지난해 11월 말 현재 548건으로 급증 추세다. 지역 적으로는 북한산과 맞닿은 종로 은평 성북 도봉구 등에 집중됐다. 30%(405건)가 종로구에서 목격됐다. 이어 은평구 22%(290건), 성북구 11%(147), 도봉구 10%(139건), 강북구 9%(118건) 순이었다. 농촌 지역에도 사정은 비슷하다. 지난해 경기도 내 멧돼지 출현 신고건수는 3091건으로 전년도 1984건으로 55.8%(1107건)이나 증가했다. 출현 개체 수도 5689마리나 돼 전년도 2530마리보다 3159마리나 많아 124.9%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이중 1862마리만 포획됐다.
국립공원관리공단도 최근 무인카메라를 통해 모니터링한 결과 북한산국립공원 일대에만 약 120마리의 멧돼지(km²당 2.1마리)가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2014년부터 3년간 연평균 199건이나 출현했다. 3일에 두번 꼴이다. 특히 야간인 오후 6시∼익일 오전 5시의 멧돼지 출현 횟수가 전체의 87.9%를 차지했다.
전문가들은 개체 수가 급증한 멧돼지들이 먹을 것을 찾거나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인가에까지 침입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멧돼지 피해 심각…지자체 보상 조례까지 제정
이같은 멧돼지의 출몰로 인한 피해는 심각하다 2012년부터 2015년까지 최근 4년간 22명이 다치고 1명이 숨지는 등의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농작물ㆍ시설물 피해 등의 규모는 최소 100억원 이상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전국 지자체들도 지난해 9월 서울 은평구가 조례를 제정하는 등 피해 보상에 나서고 있다. 220여개 지자체 중 80여곳을 뺀 나머지들이 보상 조례를 만들었다. 그러나 농작물ㆍ인명 피해만 소액 보상할 뿐 시설물 훼손 등에 대해서는 보상해주지 않고 있다. 이에 김삼화 국민의당 의원이 보상 금액ㆍ범위를 확대하는 법안을 발의한 상태다.
▲멧돼지 대처법
그렇다면 겨울 야간 산행이나 성묫길에 멧돼지를 만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서울시소방본부에 따르면, 멧돼지와 서로 주시하고 있는 경우에는 뛰거나 소리치면 멧돼지가 오히려 놀라 공격할 수도 있다. 침착하게 움직이지 않으면서 멧돼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라. 그러면서 시야에서 천천히 벗어나야 한다.
우선 가까운 나무, 바위 등 은폐물 뒤로 몸을 피하고 멧돼지의 다음 행동을 예의 주시한다. 야생동물은 직감적으로 상대가 겁을 먹은 것으로 판단하고 공격하는 경우가 많다. 절대 멧돼지를 보고 크게 놀라거나 달아나려고 등을 보이는 등 겁먹은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우산을 들고 있다면 펼치고 뒤로 숨어도 된다.
어느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멧돼지를 발견했을 경우에는 조용히 뒷걸음질해 안전한 장소로 피해라. 돌을 던지는 위협행위나 손을 흔들어 주의를 끄는 행동 등을 절대 해서는 안 된다. 멧돼지는 적에게 공격을 받거나 놀란 상태에서는 움직이는 물체나 사람에게 저돌적으로 달려와 큰 피해를 입힐 수 있다. 가장 가까기에 있는 주변의 나무, 바위 등 은폐물에 몸을 숨겨야 안전하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