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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 일상의 잔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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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 일상의 잔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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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이 처음 녀석을 발견했을 때는 부리가 심하게 부러져 있었다. 사냥꾼에게 당한 게 틀림 없었다. 독수리가 부리를 상실했으니 생존 가능성은 희박했다. 며칠 못가 굶어죽을 것이 뻔했다. 주민들은 동물보호단체에 도움을 청했다. 돌아온 답은 신통치 않았다. "부리가 없어서 먹지 못하니 안락사를 시키는 편이 좋겠네요."


어쩌면 주민들은 안락사를 선택했을 수도 있었다. 그때까지도 그들은 이미 충분한 선행을 베풀었으니까. 하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선행은 한발 더 나아갔다. 주민들은 궁리 끝에 치과의사를 찾아갔고, 치과의사는 인조부리를 선물해줬다. 그렇게 독수리는 새 삶을 찾았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접한 캐나다 독수리 미담이다. 이야기와 함께 올라온 사진 3장은 더욱 인상적이다. 독수리가 부상당한 안타까운 모습, 인조부리를 장착하는 시술 장면, 다시 되찾은 맹금류의 위엄.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사진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작은 친절이 낳은 놀라운 기적.'


또 다른 사례다. 2012년 어느 날 뉴욕 라구아디아 공항에서 이제 막 출발하려던 비행기가 갑자기 멈춰섰다. 기계 결함이나 지각 고객 때문이 아니었다. 화물칸에서 개 한 마리가 탈출해 활주로를 마구 뛰어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위험천만한 상황이었다. 공항 직원들이 생포하려 애썼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급기야 개 주인이 비행기에서 내려 개를 불러 안았다. 상황은 30분만에 종료됐다.

그로부터 4년이 흐른 2016년 말, 비슷한 일이 인천공항에서 벌어졌다. 인천에서 태국으로 가는 타이항공 여객기에서 개 한마리가 활주로 뛰쳐나왔다. 대형사고가 날 것이 우려됐고 직원들이 투입됐다. 개는 사살됐다. 30여분만에 비행기는 이륙했다. 같은 30분, 다른 결말.


무릇 친절과 선행은 피곤한 법이다. 조금은 양보를 해야 하고, 약간은 손해를 봐야 하고, 적잖은 불편을 감수해야 하므로. 만약 개를 사살하지 않으려면 출발 지연에 대한 고객들의 양해를 구하고, 사살 대신 마취를 시키려면 약발이 먹힐 때까지 또 얼마 만큼의 시간이 필요했을 터. 그래서 달라이 라마는 '나의 종교는 친절'이라고 했는지 모른다. 양보와 손해와 불편이 가져다주는 기적 같은 환희를 뜻하는 바. 허리 굽은 노인의 짐을 거들어주는 마음부터 사회 부조리에 맞서는 용기까지 친절과 선행은 우리삶 곳곳에서 발현된다.


그러나 친절은 또한 너무 취약해서 쉽게 무너지기도 한다. 나만, 우리만, 끼리끼리 잘 먹고 잘 살면 그만이라는 폭력적인 자기애(自己愛). 돈, 실적, 승리, 성공, 속도, 효율성, 성과주의…라는 이름의 '일상의 잔인함'. 이런 각박한 세태는 실패를 용서하지 않고, 과정보다는 결과만 중시하며, 생명을 살리기보다는 죽이기 일쑤다. 그런 일상의 잔인함이 세월호 참사로 이어졌고, 거짓 정치꾼들에게 표를 몰아줬고, 썩을대로 썩은 '최순실 게이트'를 발발시켰다.


친절과 선행이 실종된 사회는 종착점이 디스토피아다. 내 이웃과 사회를 향한 작은 친절은 유토피아의 시작점이다. 작은 친절이 낳은 놀라운 기적. 2017년 새해 간절히 꿈꿔보는 대한민국이다.


이정일 산업부장 jayle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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