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묵은 우스갯소리 하나. "전 세계에서 중국을 무시하는 나라는 일본과 우리나라뿐이다. 그럼 중국과 일본을 동시에 얕보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고 한다. 오래 전부터 웃자고 한 이야기였다지만 더 이상 웃어넘기기에는 숨이 턱하고 막힌다. 대단한 착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베이징에서 만난 한 경제학 박사는 "'주요 2개국(G2)'이라는 용어를 가장 많이 쓰는 나라는 미국을 제외하면 한국 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가 만난 중국인 가운데 자국을 G2라고 지칭하는 경우는 보지 못했을 뿐더러 낯 간지러워한다고 덧붙였다. 우리가 보는 중국은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경제적 의존도가 높은지 몰라도 중국은 그렇게 자기 가치를 절상하고 있지 않다는 얘기다. 중국을, 중국인을 대하는 한국의, 한국인의 잣대는 이중적이라는 걸 절감했다.
그런데 중국에 살면서 중국인을 겪어본 한국인은 생각이 좀 다르다. 중국이 지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가까운 나라'인 것은 맞지만 북한을 사이에 두고 정치적인 이해관계는 오랜 대척점에 있었던 '먼 나라'로도 평가한다. 정치적으로 한 번 수가 틀리면 언제든 안면을 바꿀 수 있으니 경계심을 늦춰선 안 된다는 것이다. 한반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결정에 중국이 어떠한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보복할 것을 예견하지 않은 전문가가 없었을 정도다.
문제는 보복의 대상과 강도가 날로 무거워지고 있는 데 반해 우리 정부는 대응할 뾰족한 수가 없다는 점이다. 중국의 경제는 더 이상 중국만의 경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사드 부지 제공에 따른 중국 당국의 표적 수사 덫에 빠진 롯데그룹이 대표 사례다. 영업 정지 가능성마저 커지면서 갈 길 바쁜 롯데의 중국 사업은 사실상 '시계제로' 상태다. 한 대기업 주재원은 "중국에서는 소방 권력이 기업을 옥죄는 최고의 권력 수단 중 하나"라면서 "소방과 세무조사를 동원했다는 것은 롯데에 실질적 타격을 주겠다는 결론을 내린 강력한 보복 조치"라고 귀띔했다.
요즘 중국 전문가 사이에서 많이 들리는 단어가 바로 '프레너미'다. 박한진 코트라 타이베이 무역관장은 저서 '프레너미'에서 친구(friend)와 적(enemy)의 합성어인 프레너미는 1953년 미국의 칼럼니스트 월터 윈첼이 소련을 이렇게 부르면서 알려졌다고 적었다. 그러나 2012년 2월 당시 부주석이었던 시진핑 국가주석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LA타임스가 "프레너미가 왔다"고 보도하고부터 미중 관계의 상징적인 단어로 더 많이 쓰이게 됐다.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는 신(新)냉전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의 최소한의 자존감은 스스로 지켜내야 하지 않을까. 외치(外治)에 신경 쓸 여력 없는 대한민국 사회의 현 주소가 답답하기만 하다.
베이징=김혜원 특파원 kimhye@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