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베이징=김혜원 특파원]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 당선 이후 나타난 달러 강세 영향으로 중국의 위안화 가치가 뚝뚝 떨어져 8년여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트럼프 리스크'라는 돌발 변수를 맞은 중국 중앙은행 인민은행은 위안화 국제화 추진 과정에서 안정적인 통화 정책을 펴는 데 고민이 더욱 깊어진 모습이다.
블룸버그 통신은 14일(현지시간)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충격적인 승리를 거두자 저우샤오촨(周小川) 인민은행 총재가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보도했다.
우선 강력한 보호무역주의를 표방한 트럼프가 공약대로 중국산 제품에 45% 관세를 매기거나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할 경우, 대(對)미국 수출 비중이 큰 중국으로서는 경제에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스위스 투자은행 UBS는 "미국이 중국산 제품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면 인민은행은 위안화 추가 평가절하 압력에 직면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관세 증가분 만큼의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얘기다. 그러나 위안화 약세와 함께 미국의 대중국 무역수지 적자가 지속될 경우 미국이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하고 제재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도 저우 총재로서는 딜레마다.
이날 달러·위안 환율은 달러당 6.8495위안으로 고시됐다. 이로써 위안화 가치는 지난 2008년 12월8일(6.8509위안) 이래 7년 11개월 만에 최저로 추락했다.
'신(新)고립주의' 노선을 택한 트럼프의 보호무역 성향이 오히려 위안화 국제화를 가속화할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영국 스탠다드차타드는 미국의 보호무역주의로 인해 해외에서 위안화 결제 비중이 커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
관타오 전 중국 외환관리국 국제수지사장(국장급)은 "트럼프가 반세계화 입장을 취하면 위안화는 국제 위상을 높이는 기회가 될 것"이라며 "투자 자산 다변화에 대한 지속적인 수요가 위안화에 기회"라고 판단했다. 미국이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반세계화 기조를 강화할수록 달러 이외의 자산에 대한 투자 수요가 많아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예고한 재정 확대 정책은 중국에서 자본 이탈 우려를 키우고 있다. 이미 미국 대선 이후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 국채 금리가 요동을 치고 있다.
이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가 2.301%를 찍어 지난해 12월30일 이후 장중 최고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3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는 지난 1월 이후 처음으로 3%를 넘었다.
미국 국채 금리가 올라가면 미국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외국 정부와 기업의 비용이 늘어나는 데다 미국 달러의 매력이 높아지면서 신흥국에서 자금 유출 리스크가 발생한다.
블룸버그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중국에서는 지난 20개월 연속 자금 유출이 이어졌다. 2014년 6월 4조달러로 사상 최대 수준이었던 중국의 외환보유액은 최근 3조1200억달러로 쪼그라들었다.
래리 후 맥쿼리증권 중국 경제 책임자는 "트럼프가 중국에 미칠 영향이 불투명해 인민은행이 통화 정책을 운용하기 더 까다로워지고 중립성을 유지하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각에서는 저우 총재의 최대 관심사는 외부 리스크가 아니라 중국 경제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장밍 중국사회과학원 세계경제정치연구소 주임은 "미국의 경제 회복과 이에 따른 달러 강세는 위안화 국제화를 위협하는 요인이지만 더 큰 위협은 국내 경제의 취약한 기반과 부채 문제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했다.
베이징 김혜원 특파원 kimhy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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