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이남곡의 인문의 창] 시진핑 주석에게 드리는 글(2)

시계아이콘01분 47초 소요

[이남곡의 인문의 창] 시진핑 주석에게 드리는 글(2)
AD

시 주석께서도 주시하고 계시겠지만, 이 글을 준비하는 동안 한국에서는 대단히 황당하고 부끄러운 일들이 표면으로 드러났습니다. 정세가 대단히 급박하여 사실은 이번 칼럼에서는 국내문제를 다뤄볼까도 생각했지만, 많은 분들이 다루고 있고, 또 제가 이 글에서 다루고 있는 것이 인류 보편적인 테마라서 그대로 글을 이어가겠습니다.


오늘은 ‘민주주의’에 대해서 말씀드려볼까 합니다.

흔히들 말하는 관점, 이른바 서구적(西歐的) 관점에서가 아니라, 인류 보편의 이상과 그것을 실현해가는 구체적 과정의 역사적·사회적·문화적 특성의 다양함이라는 관점에서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민주주의는 서양에서 발전했다’는 것은 하나의 견해에 불과하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아마 근대 몇 백 년을 두고 말하면 일리가 있겠지만, 오랜 역사와 더 오래 진전될 미래를 생각하면, 이것은 대단히 일면적인 단견(短見)이라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에 대해서도 시대와 사회제도를 넘어 인류 보편의 지혜가 ‘논어’속에 보물처럼 들어 있습니다.
서양민주주의의 뿌리로 보는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는 사실상 노예제를 바탕으로 하는 지극히 불완전한 것이었고, 그 후 동양보다 훨씬 엄혹한 중세의 암흑기를 거치고, 근대 민주주의의 요람으로 알려진 영국에서 1688년 명예혁명 혁명 이후에 확립된 ‘왕은 군림하나 통치하지 않는다’는 전통은 2500여년 전 공자가 이미 고대 중국에서 실현된 사례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지금과는 전혀 다른 조건에서도 2500여년 전의 현자는 정치의 본질을 ‘사람을 사랑하는 것(愛人)’이라고 설파하고 있습니다.


논어 ‘안연’편 22장을 보면 번지라는 제자가 공자께 인(仁)에 대해 묻습니다. 그때 공자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愛人)”라고 대답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인가에 대해서, 사람을 아는 것(知人)에서 출발하여 바른 정치에 의해 실현된다는 취지로 대답합니다. 즉 공자에게는 ‘정치란 사람을 사랑하는 구체적 기술(技術)’인 것입니다.



존경하는 시 주석님,


중국은 실제적으로 일당(一黨)이 통치하는 국가입니다. 이것이 서구민주주의라는 입장에서 보면 민주주의의 최대 장애입니다. 그러나 저는 일단 중국의 현실을 바탕으로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중국공산당의 당내(黨內) 민주주의가 그 출발점으로 떠오릅니다.


아시다시피 근대의 공산주의(과학적 사회주의)는 동양에서는 오래된 이상인 ‘대동세상’을 이른바 ‘과학적’이고 ‘현실적’으로 이루려는 목표를 가지고 서양에서 출현하였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반과학적’이고 ‘비과학적’인 사고와 태도 그리고 실천 등으로 결국 세계자본주의를 넘지 못하고, 세계자본주의에 포섭(包攝)되고 말았습니다. 오늘은 그 단정(공산당의 무오류성)의 반과학성과 이른바 민주집중제가 갖는 비민주성에 대해 논어의 지혜를 통해 말씀드려볼까 합니다.


이와 관련된 논어의 구절들을 소개해 보겠습니다.


<공자 말하기를, “내가 아는 것이 있겠는가? 아는 것이 없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나에게 물어오더라도, 텅 비어 있는 데서 출발하여 그 양 끝을 들추어내어 마침내 밝혀 보겠다.” 子曰, 吾有知乎哉? 無知也 有鄙夫問於我 空空如也 我叩其兩端而竭焉>(제9편 자한)


<공자 말하기를 “군자는 세상 모든 일에 옳다고 하는 것이 따로 없고 옳지 않다고 하는 것도 따로 없이, 오직 의를 좇을 뿐이다.”子曰, 君子之於天下也 無適也 無莫也 義之與比> (제4편 이인)


<공자 말하기를, “다른 생각을 공격하면 해로울 뿐이다”子曰 攻乎異端 斯害也已> (제2편 위정)
이 세 문장을 관통하는 것이야말로 과학적이고 민주적인 사고와 태도입니다. 지금 세계의 어떤 나라, 어떤 정당의 민주주의보다 더 업그레이드된 민주주의를 가능케 하는 사상의 보고(寶庫)로 됩니다.


제가 나름대로 현대적으로 읽어보면 다음과 같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인간은 실재를 인식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러나 불가지론에 빠지지 않고 무지를 자각(空空)한 상태에서 단정하지 않고(無適 無莫) 끝까지 무엇이 현 단계에서 가장 옳은 것인지, 무엇이 사실에 가장 가까운지를 모두의 지혜를 모아 찾아간다( 義之與比, 叩其兩端而竭焉). 이때 가장 경계할 것은 ‘자기와 다른 생각을 공격하려는 마음’이다. 자기와 다른 생각은 검토의 대상이지 공격의 대상이 아니다(攻乎異端 斯害也已).”


아마도 지금까지 논어를 해석하는 것과 차이가 있을지 모르지만, 저는 위와 같이 읽는 것이 논어 전체를 통한 공자의 뜻에 부합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만일 중국 공산당의 당내 민주주의가 이런 정도의 의식과 태도에 바탕을 둔다면, 새로운 민주주의의 역사를 쓰게 될 것입니다.


아마도 이렇게만 되면 일당독재를 넘어 다당제와 자유선거는 물론 직접민주주의와 분권(권력분립과 지방분권 포함)과 자치를 확대하는 데 중국이 전혀 두려워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원래는 두 회 정도로 마무리하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앞으로 2회 정도 더 ‘인권, 민족, 새로운 문명 등’에 대해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이남곡 인문운동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다양한 채널에서 아시아경제를 만나보세요!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