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곡성'을 만든 나홍진 감독은 아마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2016년 가을, 대한민국의 최고 권력자가 '무당 비선실세 스캔들'로 온 나라를 발칵 뒤집을 줄은. 샤머니즘과 종교, 좀비까지 뒤섞어 내놓은 그의 영화는 보고 있는 중에도, 보고 난 뒤에도 너무 어지럽고 도무지 믿을 수 없어서 '혼돈' 그 자체였다. 그런데 그 메시지는 어찌나 명료하고 강렬한지 한동안 머릿속을 지배했다. ''현혹되지 말라", "보는 대로 믿는 것이 아니라 믿는 대로 보게 된다". 인간이 얼마나 나약하고, 불안하며, 또 불완전한지 잔혹하게 보여준다.
지금 우리는 현실에서 '곡성'보다 더 어지럽고, 더 믿을 수 없는 일을 당하고 있다. 이렇게 당하는 이유를 간단하게 요약하면 우리가 그저 현혹돼 믿는 대로 보아온 탓이다. '명문대'를 졸업했고, '대통령의 딸'이었으니 교육을 잘 받았으리라 믿은 사람들이 많았다. 고통과 시련의 시간이 있었으니 정신도 성숙했으리라 생각하고 싶었다. 말이 짧고 앞뒤가 맞지 않았지만 그저 "표현이 좀 서툴다"고 이해하려 했다.
대통령이 되기 전에 수많은 신호가 있었지만 무시됐다. 자기 의사를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하고, 소통을 안 하고, 이단교주인 최태민과 그 일가와의 숨겨진 의혹이 있다는 것을 국민이 알았지만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외롭고 불쌍한 영애'라는 감성적 포장과 '원칙의 리더십'이라는 이미지 정치에 의해 우리가 현혹됐기 때문이다. 믿는 대로 본 것이다. 그렇게 대통령이 탄생됐다.
우리가 현혹된 데 따른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고 있는 이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다시 현혹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본질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먼저, 비본질적인 흥밋거리를 과감하게 거부하고 끈기 있게 본질을 추적해야 한다. 진실을 다 알면서 국민을 현혹시켜 '대통령 권력'을 창출한 자, 자기 사리사욕을 위해 그것을 방조한 자, 그 권력을 부당하게 누린 자를 가려내야 한다. 최순실이 프라다를 신었는지, 호스트바를 출입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최순실을 희생양 삼고 우리의 말초적인 관심을 자극해 본질을 흐리려는 시도에 더 이상 넘어가지 않아야 한다.
일부 보수 언론과 종편은 국민을 현혹시킨 주범이면서 은근슬쩍 책임을 회피하고 넘어와 같이 돌팔매질을 하고 있다. 이번에 우리는 권력을 견제하는 '언론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정도를 걷는 언론인이 얼마나 필요한지 뼈저리게 깨달았다. 본질적 기사에 집중하도록 하는 것, 결국 국민이 확실하게 요구하고 준엄하게 꾸짖을 때 가능해진다.
둘째,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권력자를 용서하지 않아야 한다. 대통령부터 정치인, 검찰까지 국민 앞에서 버젓이 거짓말과 억지피우기를 반복하고 있다. "최순실을 모른다", "본 적도 없다", "기억에 없다" , "순수한 마음", "범죄인 줄 몰랐다", "내 PC가 아니다". 게다가 중대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공범끼리 입 맞추고 증거인멸 할 시간'을 충분히 제공하는 검찰이라니. 블랙 코미디에 막장이다. 우리가 오래 기억하지도, 끈기 있게 추적하지도 않으니 두려움 없이 이런 짓을 한다.
셋째,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개혁을 해야 한다. 정치를 혐오하고 외면할수록 현혹되기 쉬운 법이다. 국민이 깨어있으면 어떤 권력도 함부로 할 수 없다. 위기는 기회다. 우리는 이 엄청난 국기문란의 참사를 오히려 개혁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국민의 뜻이 제대로 반영되는 정치 시스템을 구축하고 국민을 받드는 권력자를 선출해야 한다. 너무 큰 대가를 치른 만큼 얻는 것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은형 국민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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