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오상도 기자] 대한민국을 집어삼킨 '최순실 게이트'의 블랙홀이 좀처럼 끝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회고록에서 비롯된 '회고록 정국'은 다시 '최순실 정국'으로 급변했지만, 해법을 둘러싼 여야 간 고민과 시각차는 여전히 큰 간극을 띠고 있다. 세 가지 의문점을 짚어봤다.
◆보이지 않는 손?= 가장 큰 의문은 '보이지 않는 손'의 존재 여부다. 그동안 언론은 측근인 최씨에게 휘둘려 국가 기밀까지 누설한 '식물 대통령'의 모습을 부각시키는데 주력해왔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도 17%까지 추락하면서 고(故) 김영삼(6%)ㆍ노무현 전 대통령(12%)의 지지율 최저치를 갱신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궁금증이 쌓이는 대목은 또 있다. '이것이 나라냐'는 시위대의 항의가 극에 달할 무렵 청와대의 인적 쇄신, 검찰의 압수수색, 여당의 거국내각 수용 등 당정청의 대응이 거의 동시에 이뤄졌다. 사태의 열쇠를 쥔 최씨도 급작스럽게 귀국해 검찰에 출석하면서 의문을 증폭시켰다. 마치 한 편의 잘 짜인 시나리오처럼 대응이 이뤄지자, 박 대통령 뒤에서 여전히 누군가가 조정자의 역할을 맡고 있을 것이란 추정을 가능케 했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차은택 감독 등이 거론되지만 추측만 난무할 따름이다.
◆野 하야ㆍ탄핵에 반대하는 이유= 대통령 하야ㆍ탄핵의 목소리가 나날이 높아지지만 야권은 이 같은 주장이 부담스러울 따름이다. 그간 주장해온 특검ㆍ거국내각에 여권이 화답했을 때도 야권은 주춤했다. 겉으론 진상규명 없는 거국내각은 속임수로 끝날 것이란 점을 강조했지만 속내는 다를 수 있다.
하야나 탄핵이 성사될 경우, 향후 닥쳐올 정치ㆍ경제 혼란을 우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또 역풍이 불 경우 대구ㆍ경북(TK)을 중심으로 다시 보수세력이 결집할 수 있다. 이때 새로운 여권인사가 부각되면 최순실 게이트란 호재를 내년 대선정국까지 이어갈 수 없게 된다. 무엇보다 특검이나 거국내각 등으로 무게 중심이 쏠릴 경우, 문제의 본질을 흐릴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했다.
야권에 별 실익이 없는 거국내각 합의도 마찬가지다.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며 시위에 나선 시민들에게 동조하기도, 무늬뿐인 거국내각에 어정쩡하게 타협하기도 어려운 이유다.
◆박정희 신화의 몰락= 박 대통령의 추락이 '박정희 신화'의 몰락과 궤를 같이 한다는 건 여권에는 뼈아픈 대목이다. 그동안 성장 신화의 근간에는 19년에 걸친 박 전 대통령의 재벌 중심 산업화 전략이 자리했다.
우리 사회에선 이 같은 성장 신화는 반드시 넘어야 할 산으로 지적받아왔다. 좌파 정치인들이 필두에 섰다. 그러나 문민정부 이후 경제가 흔들릴 때, 노무현ㆍ김대중 정부 시절 소모적인 논쟁이 불거질 때마다 국민들은 이 신화를 기억의 창고에서 다시 끄집어냈다. 덕분에 '잃어버린 10년' 이후 '전직 건설회사 사장'과 '독재자의 딸'로 불리던 지도자들이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잇따라 정권을 출범시킬 수 있었다. 양극화와 청년 실업, 저성장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는데도 말이다.
결국 총선 패배에 이은 최순실 게이트로 이 신화의 확대 재상산에는 확실한 브레이크가 걸릴 것으로 보인다. 변혁기에 우리 경제의 패러다임을 바꿀 주인공이 박 대통령이란 꿈이 물거품이 되면서, 보수 우파의 정권 재창출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오상도 기자 sdo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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