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30일부터 시작…"끝까지 소녀상 지키겠다" 각오
[아시아경제 금보령 기자]"300일이나 지킬 줄은 몰랐어요."
23일 오전에 만난 '소녀상 지킴이' 황보우진(21)씨의 말이다.
서울 종로구 중학동에 위치한 '평화의 소녀상' 옆에는 이를 지키는 대학생들이 밤낮으로 함께하고 있다. 지난해 12월28일 한·일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합의를 체결한 뒤 소녀상을 없애려고 하자 이에 반대하기 위해 대학생들이 거리로 나온 것이다. 지난해 12월30일부터 시작한 노숙농성은 어느덧 오늘로 299일째. 하루만 지나면 300일을 맞이한다. 황보씨는 "300일이나 이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것에 대해 굉장히 실망스럽고 안타깝다"며 "불합리한 합의니까 당연히 번복될 줄 알았다"고 덧붙였다.
이날 기자가 찾은 노숙농성장은 투명한 비닐로 둘러싸여 있었다. '웬 비닐인가'싶어 질문을 던지자 황보씨가 대답을 했다. 그러나 비닐이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너무 커서 잘 들리지 않아 "네 뭐라고요?"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그러자 황보씨는 더 큰 목소리로 "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서 조금이나마 따뜻하게 하려고 어제부터 비닐을 쳤다"며 "어제 여기서 잤는데 이 비닐소리 때문에 잠을 좀 설쳤다"고 얘기했다.
이 외에 이곳에서 생활하는 데 불편함은 없을까 싶었다. 개방된 도로 위에서 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황보씨 옆에 앉아 있던 이모(21)씨는 "자는 사이에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르니까 다들 굉장히 예민해져 있다"며 "장기간으로 노숙농성하는 분들은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지치는 게 사실이다"라고 설명했다. 지난 2월부터 이곳에 나온 황보씨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밥도 제대로 못 먹는다. 아침은 먹었냐는 질문에 황보씨는 먹던 '빵'을 가리켰다. 지킴이들은 식당에 가서 밥을 먹기 보다는 주로 빵이나 편의점 도시락을 먹는 편이다. 자리를 비우면 경찰들이 물품을 수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동안 힘든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지킴이들을 응원하는 시민들이 항상 곁에 있어서다. 인근 공사장에서 일하는 분들은 지킴이들이 물건을 보관할 수 있는 창고를 내어주셨다. 겨울에는 난로를 켤 수 있게 근처 주유소에 기름값을 미리 내주고 간 시민이 있는가 하면, 이불 등 필수품을 주고 가는 시민 등도 있었다. 지킴이들은 이런 시민들을 '고마운 분들'이라고 표현했다.
이날도 수많은 시민들이 지킴이들을 응원하러 왔다. 대전에서 올라온 정모(34)씨는 "제가 못하는 걸 학생들이 대신 해주고 있으니까 정말 고맙다"며 "학생들 대단하고 멋있다"고 얘기했다. 부산에서 올라왔다는 황재석(48)씨는 빗방울이 떨어지는데도 소녀상을 찾았다. 황씨는 "기성세대들이 빚지고 있는 거 같다"며 "학생들도 할 일이 많을 텐데 이렇게 소녀상을 지키고 있는 걸 보면 어른들이 부끄럽다"고 말했다.
지킴이들이 가장 기쁠 때는 '소녀상을 잘 지켜왔다고 느낄 때'다. 이씨는 "저는 여기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그동안 이곳을 지키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소녀상이 철거됐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며 "지킴이들이 소녀상을 지켜냈다"고 강조했다. 황보씨 또한 "300일 가까이 무사히 소녀상을 지켜낸 게 가장 기쁘다"고 말하며 웃었다.
소녀상을 지킨 지 300일이 됐지만 이번에는 아무런 행사가 없을 예정이다. 대신 1년이 되는 날 행사를 열 계획이다. 황보씨는 "올해가 윤년이다 보니 1년이 되는 날이 12월28일이다"라며 "한·일 위안부 합의 1년이 되는 날이라 상징적인 의미가 있어서 뭔가 하려고 논의 중에 있다"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지킴이들은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질 때까지 이곳에 있을 것이다"라며 소녀상을 끝까지 지키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금보령 기자 gol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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