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서울 집값 1.26% 오를 때 지방은 0.06% 하락
정부, 강남 집값 잡으려다 장기침체 빠져들까 우려
전문가 "투기과열지구 부작용 만만치 않다" 지적도
[아시아경제 이민찬 기자] "현재 부동산 시장이 과열이라고 보는 데는 착시 현상이 있습니다. 강남 재건축 아파트 등 일부 지역에 사람들이 몰리는 반면 지방은 내리막길을 걷고 있습니다. 이런 시장 상황을 꾸준히 모니터링 해 필요한 정책을 내놓을 방침이지만, 섣불리 움직일 때는 아닙니다."
부동산 정책 당국자는 최근 시장 상황을 이 같이 진단했다. 부동산 시장의 양극화가 심화하는 상황에서, 특정 지역을 타깃으로 한 대책이 자칫 시장 전반을 위축시킬 수 있어 조심스럽다는 얘기다. 그러나 일각에선 이를 방치할 경우 실수요자들의 피해로 이어진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정부가 양극화의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정부의 고민이 깊은 이유는 집값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올해 1~9월 주택 가격이 지난해 대비 전국 평균 0.33% 상승했다. 특히 서울은 1.26%, 수도권은 0.75% 올랐다. 하지만 지방(비수도권)은 0.06% 가격이 하락하며 전국 평균치를 끌어내렸다. 잘 나가던 지방 대도시들이 하락세로 돌아선 영향이다.
청약경쟁률에서도 이 같은 상황을 엿볼 수 있다. 지난 6일 서울 강동구 '고덕 그라시움' 1621가구 모집에 3만6017명이 몰리며 올해 서울에서 분양한 아파트 가운데 가장 많은 청약자 수를 기록했다. 서초구 '대림 아크로리버뷰'는 최고 430대1의 청약경쟁률로 기록을 갈아치웠다.
그러나 지난달 충북 진천에서 분양한 270가구 규모의 한 아파트에는 1순위에서 단 한 명도 접수하지 않았다. 지난 4월 제천에서 740가구 분양에 나섰던 건설사 역시 한 명의 청약도 받지 못했다. 경북 김천, 경남 거제, 경북 포항 등에서도 지난달 아파트를 분양했던 건설사들이 고전을 면치 못했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부동산학)는 "강남 재건축의 과열이 수도권으로 확산하고 있다고는 하나, 지방 대부분은 부동산 경기가 침체되고 있다"면서 "국내 경제 상황이 부동산 시장에 의존하고 있는 형국인데, 정부가 부동산 시장의 규제를 강화할 때 미칠 부작용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정부는 시장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투기과열지구 지정 등 추가 대책을 망설이고 있다.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되면 청약자격 뿐 아니라 전매제한이 강화된다. 특히 조합원의 지위 양도가 제한되는 재건축 시장이 직격탄을 맞는다. 투기과열지구는 2011년 강남권을 끝으로 모두 해제됐다. 2008년 금융위기로 침체한 부동산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서였다.
안팎으로 녹록치 않은 경기 상황은 이제 정책의 변수가 아닌 상수가 됐다. 경제 성장에서 건설 분야에 의존하는 비중이 높아졌다. 한국은행은 올해 1분기와 2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전년 동기 대비)이 각각 2.8%, 3.3%였는데, 건설 투자를 제외하면 모두 1.6%씩에 그쳤다고 분석했다. 부동산 시장이 우리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셈이다.
심 교수는 "2000년대 투기과열지구 지정한 곳을 보면 이듬해에 10% 이상 집값이 급등하는 등 오히려 부작용이 컸다"면서 "정부가 인위적으로 분양가를 묶으면서 오히려 투자 수요를 부추긴 측면도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불법 전매 등 단속을 강화하고 시장 논리에 따라 규제를 합리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민찬 기자 leem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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