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 사회의 '힘 있는 자'들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정치계, 법조계, 경제계를 망라해 그 어디를 둘러봐도 정상적인 곳이 없는 것 같다. 아침에 눈을 뜨면 연일 터져 나오는 민망스러운 뉴스들 때문에 텔레비전을 켜는 것조차 두렵다. 하루하루 근근이 삶을 이어나가는 서민들을 등치는 금융사기가 빈발하고, 제도권의 대형금융사건도 연이어 터지고 있어 더욱 착잡하다.
사실상 전 국민이 금융소비자들인데, 금융 사기꾼들의 유사수신행위와 금융회사들의 불완전판매로 인해 일상적 삶이 파괴된 피해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2008년 시작되어 아직도 해결이 요원한 '조희팔 사건'은 7만여 명의 피해자들에게 무려 5조원의 손해를 입혔다. 2014년 투자자 3000여명으로부터 약 1400억원 규모의 투자사기를 벌인 '이숨투자자문 사건'에 이어, 올해 1000여명으로부터 1700억원의 불법주식매매를 통해 부당이득을 챙긴 '이희진 사건'과 소위 '제2의 조희팔 사건'으로 불리는 '김성훈 사건'으로 인해 1만2000여명이 1조원이 넘는 피해를 봤다.
이와 같은 금융사기사건의 특징은 금융소비자들이 사기꾼들로부터 '단기간 투자로 고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미끼에 넘어갔다는 점이다. 금융 사기범들은 신규 투자자에게 받은 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두둑한 이자를 지급하는 '돌려막기 수법'은 물론, 투자자들이 지인을 추천해 투자금을 모집하면 추가 수당 등을 지급하는 다단계 방식을 활용했다. 금융사기의 범행수법은 점점 대담해지고 조직화·전문화하는 반면에, 금융 당국의 감독은 여전히 허술하고 늑장수사와 '솜방망이 처벌'도 달라지는 것이 없으니, 대형금융사기사건이 끊이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미국에서도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 월가의 거물인 버나드 메이도프가 다단계 금융사기로 피해자들에게 무려 650억 달러의 피해를 입혔는데, 미국 법원은 메이도프에게 150년의 징역형을 선고했다. 우리의 경우는 어떤가. 중국에서 사망했다는 조희팔의 경우 현행범으로 체포되었더라도 형량이 최대 10년 정도의 징역형에 그칠 뿐이라고 한다. 금융사기의 피해자들은 삶이 파괴되는 경우가 허다한데도 말이다.
정부로부터 합법으로 인가받은 제도권 금융회사들의 행태도 이들 유사수신행위업자들과 별반 다를 바 없다. 2011년 저축은행 불법대출사건이 터졌고, 2013년에는 사기성 기업어음(CP)을 단기간에 대량 판매함으로써 4만명이 넘는 일반투자자가 약 1조 7000억원에 이르는 피해를 본 동양그룹사태가 발생했다.
당시 피해자들의 대부분은 개인투자자들로, 평생 모은 노후자금이나 심지어는 본인의 암 진단비 또는 배우자의 사망보험금 등 가슴 아픈 사연이 깃든 돈을 몽땅 쏟아 부었다. 투자원금을 날린 후 자살한 피해자가 한, 둘이 아니었는데, 감독책임을 지고 있는 정부 당국에서 책임진 자가 과연 있었던가.
미국 금융감독당국은 웰스 파고 은행이 고객 동의 없이 200만개가 넘는 예금계좌의 허위 개설 등을 이유로 지난달 2000억원이 넘는 벌금을 부과했고, 부정행위를 저지른 5300여명의 직원을 전원 해고했다. 또한 독일 최대은행인 도이치 뱅크는 모기지담보부증권(MBS)을 투자자에게 안전한 것처럼 속여 판매한 혐의로 지난달 미국 법무부로부터 140억달러라는 거액의 징벌적 과징금을 부과 받기도 했다.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금융사기사건의 경우 일반 사기사건과 달리 그 피해자가 광범위하고 피해액도 거액이라는 점에서, 정부 당국은 금융사기를 뿌리 뽑겠다는 각오로 철저한 사전적 감독은 물론 실효성 있는 제재 시스템을 정착시켜야 한다.
맹수석 한국금융소비자학회장·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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