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정준영 기자] 지난달 25일 숨을 거둔 고(故) 백남기씨에 대한 부검영장 집행 및 특별검사 도입 여부가 정국의 핵으로 부상하고 있다.
백씨 유족은 지난해 11월 민중총궐기 집회에서 경찰 직사살수로 백씨가 생명의 위기를 맞은 데 대해 같은 달 18일 당시 경찰 수뇌부·실무자들을 살인미수(예비죄명 업무상과실치상) 등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유족이 국가·경찰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민사재판 절차도 지난달 시작됐다.
형사소송법상 3개월로 주어진 고소·고발 사건 처리기한이 강제력을 갖지 않는다지만, 상해가 사망으로 이어지기까지 317일간 현장 책임자 4명만 불러 조사한 검찰 수사는 과도하게 더뎠다. 반면 유족과의 협의 등 제한조건이 의무라는 법원 해석에도 불구하고, 6일 검찰은 “조건부 영장이란 없다”면서 부검 강행 입장을 피력했다. 집행여건 역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적합하며, 집행 주체는 경찰이라는 게 검찰 입장이다.
앞서 법원은 올해 7월 민중총궐기 관련 형사재판에서 경찰이 집회 참가자 해산 업무 도중 백씨 등에 대해 행한 직사살수는 의도적이든 조작실수든 ‘위법하다’고 밝혔다. 법치국가에서 경찰이 집회 참가자를 해산하려고 살인도 불사했다는 의구심을 접는다면 최소 업무상과실치상이 유력하다.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이 “사인을 과학적, 객관적으로 규명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부검은 그 위법한 공권력 집행이 죽음까지 이어진 ‘업무상과실치사’와 주치의가 적어놓은 ‘병사’ 사이 갈림길 위에 있다. 결국 공권력 행사주체의 민·형사 책임을 저울에 달아놓고서 법원이 산정할 구체적인 책임에 따른 ‘형량 상한’과 ‘가해자 책임 몇%’를 두고 저울추 싸움을 하게 된 형국이다. 나아가 여당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국가공권력의 위법한 행사로 사망했다고 단정할 수 있느냐”고까지 언급해 아예 저울을 흔들기도 했다.
업무상과실로 사람이 다치거나 죽은 경우 피해자 생사에 따라 처벌강도를 달리하는 형사 과실범과 달리 모두 5년 이하 금고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형 대상이다. 법조계·의료계를 막론하고 비판이 제기되는 주치의 소견 말마따나 설령 적극적 연명치료 여부가 문제돼 책임 몇%가 움직인들 위법한 공권력 집행까지 지우기는 어려워 보인다.
수사기관이 얽힌 문제를 떠나 상식에 기대 생각해본다. 의료과실 분쟁 상대방인 의사에게 재수술 집도를 맡기는 가족이 있을까. 행정자치부장관 소속 외청인 경찰청의 책임을 같은 부처 소속기관인 국과수의 셈법에 맡기는 문제는 작금의 밑바닥까지 떨어진 수사기관에 대한 신뢰 문제와도 결부된다.
책임의 경중을 가릴 정확한 사인규명을 위해 모든 절차를 활용했다는 외관을 조성하려면 부검은 필요하다. 다만 ‘뇌사도둑’ 사건에서 보듯 판례상 부검 여부를 떠나 인과관계 판단은 사망진단서와 의료기록으로 충분하다. 법원이 영장에 붙인 제안·절차를 무시한 영장 집행 결과물이 증거능력을 갖지 못할 소지도 있다.
수사기관의 ‘때늦은’ 진상규명이 부디 피해자 사망을 기다려 책임소재를 흩어 놓으려는 사법 뺑소니가 되지 않길 빈다. 야3당(우상호·박지원·노회찬 발의, 찬성163명)은 검·경 수사로는 실체적 진실규명이 불가능하다며 지난 5일 특별검사 도입을 요구했다.
정준영 기자 foxfur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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