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이 노부히로 감독의 '불량소녀, 너를 응원해'
꼴찌학생의 성공 실화 뼈대로 일본 교육의 현 주소 짚어
본인의 자발적 성장도 중요하지만 주변 어른들의 노력에 더 관심
적절한 교정으로 문제아 바꿀 수 있다는 긍정적인 시선 보여줘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한국의 대학입시 경쟁과 교육열은 1970년대 일본을 닮았다. 성적 비관에 따른 자살, 왕따, 교권 하락에 대한 우려 등이 일본을 흔들었던 '오치 코보래(학교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는 학생)', '이지메(집단 괴롭힘)', '부등교(등교 거부)', '학급붕괴(교사가 학생들에 대한 통제력을 잃은 상태)' 등과 놀랄 만큼 유사하다. 학력 저하에 대한 걱정과 공교육 불신으로 사립학교 입시에 뛰어든 일본 학부모들 역시 자사고·특목고 입시에 매달리는 한국 학부모들을 연상케 한다. 핀란드식으로 대표되는 유럽의 교육법을 찬양하지만, 실제로는 치열한 경쟁 속으로 아이들의 등을 떠민다.
최근 일본 교육은 학교 성적과 인성을 모두 잡는 방향으로 흐른다. 기업들이 지식과 더불어 교양, 소통, 윤리관 등을 중시하면서 부모들이 어릴 때부터 가정교육에 힘을 쓴다. 아이들의 능력과 흥미에 맞춰 학습을 지도하고 생활까지 관리하는 사립학교를 보내며 일본사회가 원하는 인재로 성장하기를 희망한다. 지난 21일 개봉한 '불량소녀, 너를 응원해'에는 이러한 사회적 인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츠보타 노부타카의 경험이 실린 원작 '비리갸루'를 뼈대로 그려 한국 교육의 미래를 가늠할 수 있다.
'유토리'와 '탈(脫)유토리' 사이
"어느 학교에서든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애가 더 이상 학교에 오고 싶지 않아 해요." "어릴 때 여러 일을 겪어봐야 성장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게 이 학교의 방침인가요?" 사야카 구도(아리무라 가스미)의 어머니(요시다 요)는 초등학생 딸이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자 담임선생을 면담한다. 답변이 시큰둥하자 전학을 보낸다. 이듬해 사야카는 메이란 여자중학교에 입학한다. 고등학교, 대학교와 함께 운영되는 사립학교다. 사야카는 죽이 잘 맞는 친구들과 놀며 공부와 담을 쌓는다. 학교는 이들을 통제하지 못한다.
일본은 2002년 '유토리 교육'이라는 융통성 있는 공교육 시스템을 마련해 공부로 고통을 받는 아이들의 숨통을 터줬다. 주 5일제를 적용하고, 학습 내용과 수업 시간을 최대 10%까지 줄였다. 그러나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학력 저하' 논란까지 시달려 2011년 '탈(脫)유토리'로 노선을 바꿨다. 주 5일제는 유지했지만 국어·수학·과학·사회·외국어 등의 비중을 크게 높였다. 사야카는 이런 변화를 경험한 세대다. 주입식 교육에 적응하지 못해 스스로 공부를 못한다는 의식에 사로잡힌다. 학교는 이들을 방치한다. 사야카의 어머니는 같은 질문을 한다. "이게 이 학교의 방침인가요?"
한때 일본사회는 이지메, 부등교, 학급붕괴 등에 대한 비난의 화살을 '교육마마', 즉 극성맞은 어머니들에게 돌렸다. 하지만 교육마마는 단순히 어머니들의 이기심과 욕심에서 비롯된 현상이 아니다. 일본의 사회구조와 교육 시스템이 안고 있는 모순과 욕망의 집결체에 가깝다. 도이 노부히로 감독(52)은 여기에 주목한다. 사야카의 어머니를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인물로 그린다. 그녀는 무기정학을 받은 사야카를 끝까지 신뢰한다. 시험을 보고 대학교에 입학하라며 입시준비학원에 갈 것을 권하고, 학원비를 벌기 위해 택배회사에 취업한다. 성적이 오르지 않아 낙담한 딸에게 그녀는 다정하게 말한다. "괴로우면 여기서 그만둬도 돼. 충분히 노력했어."
사야카의 아버지(다나카 테츠시)는 아내에게 두 딸을 맡기고 오로지 아들 류타 구도(오오우치다 유헤이)를 프로야구선수로 만드는데 매진한다. 값비싼 배트와 글러브를 사는데 주저하지 않으면서 사야카의 학원비를 아까워한다. 류타는 강압적 교육에 짓눌린 나머지 야구를 그만두고 불량배들과 어울린다. 도이 감독은 이 실패를 통해 '슈퍼맨 파파'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슈퍼맨 파파는 유토리로 노선이 바뀌면서 등장한 이들이다. 경제적으로 교육을 뒷받침하는 것은 물론 자녀의 공부와 정서, 인성까지 세심하게 보살핀다. 유명 사립학교에 들어가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입시가 아니라 입시를 준비하는 과정에 의미를 두고 공부뿐 아니라 다양한 면에 신경을 기울인다.
'국민 첫사랑'에서 '국민 희망'으로
히로키 류이치 감독(62)의 '스트롭 에지(2015년)'에서 애절한 짝사랑 연기로 '국민 첫사랑'으로 떠오른 아리무라는 이번 영화로 희망의 상징이 됐다. 편차치(표준점수로 환산한 등급) 30의 하위 2%에서 1년 만에 편차치 70의 상위 2% 그룹에 진입하며 게이오대학에 입학한 사야코를 현실적으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특히 노랗게 염색한 머리, 당당한 말투 등에서 나타난 개성과 가부장적인 아버지를 "망할 영감"이라고 부르는 당돌함은 억눌렸던 일본 청소년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최근 일본에서는 '캬라 가에'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캐릭터를 뜻하는 '캬라'와 바꾼다는 의미의 '가에'가 합쳐진 단어로, 자기 자신을 부모나 선생님이 좋아하게 바꾸거나 친구들에게 인기를 얻으려고 노력하는 것을 말한다. 주입된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개성을 잃어버리는 아이들이 많아져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야코는 캬라 가에가 되기를 스스로 거부하는 인물이다. 게이오대학을 포기하라는 선생님에게 호기롭게 내기를 제안하는가 하면, "태생적으로 우린 그냥 이런 존재야"라며 푸념하는 동생 류타에게 "난 너와 다르다"고 꾸짖는다.
아리무라의 삶은 사야코를 많이 닮았다. 부모의 이혼으로 편모가정에서 가난하게 살았지만 중학교 때부터 여러 종류의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모았다. 계속 오디션에 참가해 2009년 히로스에 료코(36)가 소속된 플람(FLaMme)과 계약했다. 지난 7년간 주ㆍ조연을 가리지 않고 드라마 스물일곱 편, 영화 열여덟 편에 출연했다. 아리무라는 "연기도 공부와 비슷한 것 같다. 다양한 작품을 하면서 새로운 뭔가를 깨달을 때 재미가 있다"고 했다. 영어단어를 중얼거리며 자전거 폐달을 열심히 밟는 사야코도 비슷한 심정이 아닐까. "I, My, Me, Mine, You, Your, You, Yours."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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