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유진 기자] 한진그룹이 물류대란 해소를 위해 투입하기로 했던 600억원 집행에 제동이 걸리면서 화물 140억달러(16조원)이 볼모로 잡히게 됐다. 한진해운 법정관리 3주차가 지나가면서 사태 해결을 위한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화주와 피해업체들의 손해배상청구 줄소송도 우려된다.
21일 한진해운의 법정관리를 주도하는 법원에 따르면 한진해운이 하역비를 내지 못해 바다에 수십척의 선박이 바다에 발이 묶이면서 하루 용선료와 연료비 등으로 210만달러(약 24억원)의 비용이 불어나고 있다.
법정관리에 들어간 이후 이날까지 20일간 새로 발생한 미지급 용선료 등을 단순계산하면 약 480억원에 달한다. 스테이오더(압류금지조치)가 발효된 해외 일부 거점항만을 중심으로 하역이 재개되고 있지만 자금 문제는 여전히 발목을 잡고 있다.
이들 해외 항만이 밀린 하역비까지 갚을 것을 요구하고 있어 물류대란을 해소하는 데 드는 비용은 당초 예상했던 1700억원에서 2700억원으로 불어났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한진해운 선박에 물건을 선적한 화주와 영세한 포워딩 업체들의 피해가 급증하고 있지만 한진해운은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면서 "하역 지연이 계속 이어질 경우 화주와 피해업체들의 손해배상청구 줄소송이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한진해운 선박에 실린 화물의 가액이 약 140억달러(약 16조원)에 달한다. 이 중 지난 19일까지 하역된 화물 비중은 16%에 불과하다. 아직 13조원 규모의 화물이 공해상을 떠돌고 있는 셈이다.
이날 오전 기준 한진해운이 운용 중인 컨테이너선 97척 가운데 총 30척이 하역을 완료하면서 집중관리선박은 32척으로 1척이 줄어들었다. 집중관리선박은 해외 항만 인근에서 정박하지 못하고 공해상에 대기중인 선박이다. 중국, 싱가포르 등 인근 공해상에 묶여있는 선박 35척은 국내 항만으로 복귀해 하역할 예정이다
업계에서는 물류대란이 장기화되면서 회생을 위한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다는 우려가 높다. 현재까지 사태 해결을 위해 입금된 돈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사재 400억원과 최은영 유수홀딩스 회장(전 한진해운 회장)이 내놓은 사재 100억원 등 총 500억원에 불과하다.
2700억원까지 불어난 하역비용을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한진해운 대주주인 대한항공은 지난 8일부터 4차례에 걸쳐 이사회를 열고 600억원 긴급 지원 방안을 논의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다.
600억원 지원을 위해 해외 터미널 지분을 담보로 잡는 작업이 선결돼야 하는데 해외 7곳의 기관들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이 방법이 여의치 않다는 것이다. 일부 이사진들은 '법정관리에 들어간 한진해운에 대한 지원은 배임죄에 해당한다'며 자금 지원 자체를 반대하고 나섰다.
업계 관계자는 "600억원이 없어서 세계 7위 해운사가 좌초하는 최악의 구조조정이 벌어지고 있다"이라면서 "당초 한진그룹에서 약속한 방식의 자금집행이 어렵게 됐다면 다른 방안이라도 찾아서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지체되고 있는 물류대란 사태 해결을 위해 정부와 채권단이 책임을 보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회생 여부는 제껴놓고 국내 해운사의 법정관리가 글로벌 물류대란으로 번진 이 사태를 해결하는게 급선무"라면서 "이 상황을 예측하지 못하고 대책없이 법정관리를 보낸 정부와 채권단도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한진해운 법정관리를 맡고 있는 서울중앙지법 파산6부는 전날 긴급간담회를 열고 하역 지연으로 신규 채권(미지급 용선료 등)이 과도하게 불어나 과거 채권자들이 받아야 할 회생채권이 크게 침해된다고 판단할 경우 실사결과가 나오는 11월 이전에 파산 결정이 내려질 수도 있다는 내용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조유진 기자 tin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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