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유진 기자] 한진해운 전현직 대주주가 물류대란 사태의 책임을 지고 사재 500억원을 내놓은 것과 관련 전문가들 사이에서 찬반 논란이 일고 있다.
그룹 총수가 막강한 경영권을 갖는 한국적 상황을 감안하면 '무한책임'을 져야한다는 주장이 강하지만 주식회사의 '유한책임' 원칙을 흔드는 것이라며 반론도 만만치않다.
전날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사재 400억원과 최은영 유수홀딩스 회장(전 한진해운 회장)의 사재 100억원 등 총 500억원의 사재출연금이 한진해운 계좌로 입금됐다. 한진해운 대주주인 대한항공은 조건부로 600억원을 한진해운에 대여키로 했다.
이는 한진해운 물류대란과 관련해 1차적 책임이 있는 전현직 대주주가 계열사를 동원하거나 사재를 털어서라도 회사를 살리는 데 동참하라고 정부와 채권단이 압박한데 따른 것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기업이 유동성 위기를 겪을 때마다 나오는 사재출연 관행이 부실채권 해소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채권단이 법적 근거도 없는 주주의 무한책임을 강요하고 있어 회사법상 주식회사 제도를 흔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주식회사는 본질적으로 출자액 만큼 주주가 유한책임이 지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한진그룹 각 계열사의 정상적인 경영 활동에 사용돼야 할 자금이 법정관리 신청으로 이제 더이상 한진그룹 계열사도 아닌 한진해운을 위해 쓰여지는 것이 옳지않다는 것이다.
또한 한진해운의 회생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한진그룹의 출연을 요청하는 것은 한진그룹 계열사 임원에게 배임을 강요하는 셈이라고 했다.
연강흠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도 이번 사태에 대해 한진해운 임직원의 협조를 요청할 수는 있겠지만 주주에게 책임을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물류 사태는 경제 전반에 미치는 산업구조상의 문제이자 경제 인프라 문제로 당연히 국가가 해결해야 한다"고 전했다.
대주주의 사재출연이 정당하다는 반론도 적지 않다. 사주가 경영실패의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요지다. 채권단의 채권부담은 곧 국민부담이기 때문에 국민혈세를 들여 개별기업을 지원하는 것이 합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기업총수들이 많은 권한을 누리면서도 회사가 어려울 때 진정성을 갖고 책임지는 자세가 부족하다"면서 "오너가 경영실패의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된다"라며 사재출연이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한진해운은 이날 입금된 500억원을 법정관리를 주도하는 법원과 협의해 물류대란 사태 해소를 위한 하역비 지급 등으로 충당할 예정이다.
다만 500억원이 긴급유동성으로 투입되더라도 물류대란을 해결하는데는 역부족이다. 법원은 한진해운 선박 운항 차질 등 물류대란을 해소하려면 최소 1700억원의 자금이 필요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하역비 문제가 해결되면 터미널 서비스와 컨테이너 박스 연체 대금 등 체납대금 6000억원 해결도 여전히 복병으로 남아있다.
한편 대한항공 이사회가 한진해운의 미국 롱비치터미널을 담보로 잡고 600억원을 지원하기로 결의한 것과 관련 담보 대출기관 6곳과 다른 대주주의 동의를 받는 작업이 선결돼야 해서 최종 집행까지는 적지 않은 진통을 겪을 전망이다.
조유진 기자 tin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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