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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情)이고 의무 vs 짐 되니 맡기자"…벌초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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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대행업 성장세...후손·이웃 사이 갈등 소재로 전락...법원은 "벌초 안 하면 상속권 제한" 판례

"정(情)이고 의무 vs 짐 되니 맡기자"…벌초의 딜레마 부안읍(읍장 한홍)은 지역사회단체 회원들이 추석 명절을 앞두고 후손들이 돌보지 못하는 무연분묘 2400여기에 대한 벌초봉사와 공동묘지 진입로 및 주차장 정비 등 봉사활동을 잇따라 전개하면서 이웃사랑을 실천하고 있다.지난 23일 서해로타리(회장 김재희) 회원 20여명은 아침 7시부터 신흥리 공동묘지 700여기 벌초를 진행한데 이어 밀알회(회장 고석관) 회원 20여명도 신운 공동묘지 430여기와 충혼탑에 대한 벌초를 진행했다. 내달 1일에는 의용소방대(회장 정점수) 회원 100여명이 봉덕리 공동묘지 1270여기의 벌초작업과 주변 환경을 정비할 계획이어서 공동묘지를 찾는 성묘객에게 한가위의 정겨운 분위기와 조상을 기리는 미풍양속을 고취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봉사활동에 참여한 한 회원은 “추석을 맞아 실시하는 벌초행사를 통해 효 실천의 저변을 확대하고 이웃과 함께 사는 분위기 조성에 이바지한 것 같아 뿌듯하다”며 “자손을 대신해 조상에 예를 갖추는 시간이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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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정(情)이고 의무다. 모이자" vs "바쁘고 짐 된다. 맡기자".

벌초가 예전 같지 않다. 여전히 온 가족이 모여 오손도손 벌초에 나서는 가족들도 있지만 갈수록 남에게 맡기는 이들이 급증해 '대행업'이 성장세다. 심지어 벌초 때문에 가족들 간에 소송이 벌어지고 의절하는 일들도 심심치 않다. 오랜만에 내려간 고향 벌초길에 이웃과 시비가 붙어 멱살을 잡히는 일들도 종종 발생하고 있다.


충남에서 선산을 지키고 있는 김모(63)씨의 경우는 벌초를 둘러 싼 갈등으로 친척들과 의절을 결심하게 된 경우다. 10여년 전에 별세한 부친의 뒤를 이어 가문의 선산을 관리해 온 김씨는 최근 벌초에 불참하고 관리비도 보내지 않은 6촌 이상 먼 친척들에게 "더 이상 당신들의 직계 조상 묘를 관리하지 않겠다. 선산 부동산에 대한 권리도 주지 않을 것"이라고 최후 통첩을 보냈다. 김씨는 "갈수록 나이가 들고 자식들도 대부분 외지에 나가 있어 늙은 사촌 형제들끼리 모여서 겨우 겨우 벌초를 하고 제사를 지내고 있는 지경"이라며 "자신들의 직계 조상묘가 엄연히 있는데도 불구하고 10년째 코빼기도 안 비치는 친척들이 있다. 전화나 문자를 보내도 받지 않아 이번에도 응답이 없으면 그대로 밀어붙일 것"이라고 말했다.

법원은 벌초ㆍ제사 비용 분담 등 약속한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재산 상속권 박탈 등 불이익을 주는 판결을 내리고 있다. 2005년 제주지방법원이 사촌형제들이 상속 토지 분배 약속을 이행하지 않은 형수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약정서상 벌초ㆍ제사 참석 의무를 지키지 않았다"며 패소 판결한 게 대표적 사례다. 같은 해 아들이 제사 등 종손의 의무를 다하지 않자 아버지가 소송을 제기해 상속한 재산을 빼앗게 한 판결도 있다.


성묘철마다 벌어지는 교통 체증, 바쁜 일상 등을 이유로 벌초를 아예 남에게 맡기는 이들도 급증하고 있다. 1기당 7~10만원 가량의 비용이면 민간업체나 농협ㆍ산림조합 등의 대행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오가는 기름값ㆍ교통체증 등을 감안하면 경제적으로는 훨씬 저렴하다. 2008년 벌초 대행 서비스를 시작한 농협의 경우 지역 조합별로 해마다 실적이 20% 이상 급성장하고 있다. 제주도 농협만 해도 지난해 추석때 1600여건의 대행 실적을 올렸다. 경기도 여주군 한 농협 관계자는 "아직 추석까지 시간이 조금 남아 있는 데 20여건의 벌초를 대행했고 앞으로 그만큼 더 들어올 것으로 보인다"며 "해가 갈수록 출향인사 등의 대행 요청이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아직까지도 친척들이 모두 모이는 집안들도 있지만 힘든 것은 마찬가지다. 충북에 선영을 둔 김 모(39)씨는 "보통 추석 2주 전에 벌초를 하는 데 해가 갈수록 모이는 인원이 줄고 있다"며 "아직은 부모님 세대들이 살아 계셔서 그나마 벌초가 가능하지만 돌아가시고 나면 어떻게 할 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벌초하러 갔다가 낭패나 시비가 벌어지는 일도 다반사다. 경기도 사는 이모씨는 지난 24일 고향에 벌초하러 갔다가 산소 주변 농지 주인 등과 시비가 붙어 경찰서 신세를 졌다. 산소 가는 길에 농작물이 심겨져 있어 무심코 제거하자 거세게 항의하는 농지 주인과 싸움이 났기 때문이다. 자신의 땅 가운데에 남의 집안 묘지가 있다는 이유로 길을 막거나, 묘소 주위에 길이 없고 남의 땅으로 둘러 싸여 있는 경우 통행권 때문에 싸움이 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 경우 법원은 분묘기지권 등을 감안해 통행권을 보장하라는 판례를 내놓고 있다. 한편 분묘기지권이란 토지주의 허가를 받아 설치됐거나, 허가가 없었어도 20년 이상 유지돼 왔거나, 토지 매매 과정에서 특별한 조치를 약속하지 않은 채 포함돼 매매된 묘지에 대해 건물의 '지상권'과 유사한 형태로 인정해주는 일종의 '물권'(物權)이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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