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 결승선까지 뛰어야지"
"메달 못 딴다고 인생 끝나는 게 아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금 9개·은 3개·동 9개 최종 8위
32년 만에 최소 메달…절반의 성공
양궁 사상 첫 전 종목 석권은 쾌거
난민 대표팀 출전, 지구촌의 갈채
리우, 운영미숙·부실 설비 도마에
2년 후 평창, 반면교사 삼아야
[리우데자네이루(브라질)=아시아경제 김흥순 기자]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이 22일(한국시간) 마라카낭 경기장에서 열린 폐회식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금메달 열 개 이상을 따 종합순위 10위권 진입을 기대했던 우리 선수단은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금메달 9개, 은메달 3개, 동메달 9개로 최종 8위. 메달순위는 부합했으나 금메달이 한 개 부족했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대회(금 6개·은 6개·동 7개) 이후 32년 만에 총 메달수도 가장 적었다.
◆예견된 부진?=사상 처음으로 남미에서 열린 올림픽은 우리와 12시간 시차가 나고, 30시간에 달하는 장거리 비행과 치안이 불안한 현지 사정으로 제대로 된 훈련캠프를 차리지 못했다. 역대 원정 올림픽 최고성적을 낸 2012년 런던 대회(금 13개· 은 8개·동 7개) 때에는 경기장과 가까운 브루넬대학교에 베이스캠프를 마련해 선수들이 적응훈련을 했다.
역대 올림픽에서 단일 종목으로는 가장 많은 메달을 딴 유도(43개)는 이번 대회에서 은메달 두 개와 동메달 한 개에 그쳤다. 김원진(24·양주시청·60㎏급), 안바울(22·남양주시청·66㎏급), 안창림(22·수원시청·73㎏급), 곽동한(24·하이원·90㎏급) 등 체급별 세계랭킹 1위 선수들을 네 명이나 보유해 금메달 두 개 이상을 목표로 했으나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은 2개·동 3개) 이후 16년 만에 '노골드'로 대회를 마쳤다.
남자복식 세계랭킹 1위 이용대(28·삼성전기)-유연성(30·수원시청)을 비롯해 복식조의 선전을 기대했던 배드민턴 대표팀도 메달권에 들지 못했다. 금메달 두 개를 목표로 도전했으나 여자복식 정경은(26·KGC인삼공사)-신승찬(22·삼성전기)이 동메달을 따 겨우 노메달을 면했다. 8강에서 탈락한 이용대와 유연성, 김기정(27), 김사랑(26·이상 삼성전기), 여자 단식의 배연주(26·KGC인삼공사) 등은 대표팀 은퇴를 택했다.
런던 올림픽에서 최고 성적을 거둔 펜싱(금 2개·은 1개·동 3개)도 리우에서는 주춤했다. 금메달 후보로 꼽혔던 여자 사브르의 김지연(28·익산시청)과 남자 사브르의 구본길(27·국민체육진흥공단) 등이 입상권에 들지 못했다. 남자 에페의 박상영(21·한국체대)과 남자 사브르의 김정환(33·국민체육진흥공단)이 개인전에서 금메달과 동메달을 각각 한 개씩 딴 것이 위안이다.
◆청량제 양궁=이번 대표팀에 올림픽 경험자는 기보배(28·광주시청)가 유일하다. 국가대표 선발전을 최대 여섯 차례나 거치면서 객관적인 실력으로만 평가한다. '대표선수 되기가 올림픽 메달 따기보다 어렵다'고 할 정도다. 여자 양궁 2관왕에 오른 장혜진(29·LH)도 4년 전 런던 올림픽 대표 선발전 때는 경쟁에서 탈락했다.
현대자동차가 회장사를 맡은 대한양궁협회는 선수단을 완벽하게 지원했다. 협회장인 정의선 현대차그룹 부회장(46)은 대회 기간 연일 현장에 가 응원했다. 경기장 가까운 곳에 휴게실과 물리치료실, 샤워실 등을 갖춘 트레일러를 설치하고, 방탄차와 사설 경호원도 제공했다. 전담 한식 조리사를 데려가 양궁 대표팀을 위한 전용 식당도 만들었다.
협회는 런던올림픽이 끝난 뒤 한국스포츠개발원과 협업해 '리우올림픽 전관왕 달성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현대자동차는 개개인에 맞는 손잡이를 제작하거나 활에 미세한 흠을 잡아내는 비파괴 검사 기술을 도입했다. 한국스포츠개발원은 시뮬레이션을 통한 훈련과 정신과 전문의를 통한 심리 상담을 도왔다. 양궁협회와 태릉선수촌에서는 실제 올림픽 경기장과 비슷한 장비와 환경을 제공해 선수들의 적응력을 키웠다.
◆충격 속에서도 희망을, 달라진 젊음=메달을 따지 못해 눈물을 흘리거나 침통한 표정으로 경기장을 나가는 선수들의 모습이 자주 보였다. 그러나 허탈감을 이겨내고 축제를 즐기려는 선수들도 많았다. 태권도 남자 68㎏급에서 동메달을 딴 이대훈(24·한국가스공사)이 대표적이다. 그는 이 종목의 유력한 우승후보였으나 8강에서 아흐마드 아부가우시(20·요르단)에게 8-11로 져 금메달을 놓쳤다. 그는 실망하지 않았다. 아부가우시의 승리를 축하한 뒤 "올림픽에서 메달을 못 딴다고 인생이 끝나는 건 아니다. 패자가 인정하지 않으면 승리한 선수도 기쁨이 덜하고, 패자가 인정하면 승자도 더 편하게 다음 경기를 잘 뛸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했다.
남자 복싱 56㎏급(밴텀급) 16강전에서 중국의 장자웨이(27)에게 진 함상명(21·용인대)도 같았다. 그는 웃는 얼굴로 상대의 손을 들어주고 깨끗이 패배를 인정했다. 자신을 응원해준 한국 관중에게는 큰 절도 했다. 그는 "이기려고 왔는데 아쉽지만 이미 지나간 경기다. 큰 무대에서, 링 중앙에서 싸울 수 있어서 졌지만 기쁘다"고 했다.
◆감동의 리우=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지난 16일 여자 육상 예선에서 나왔다. 뉴질랜드 대표 니키 햄블린(24)은 5000m 달리기 경기 도중 갑자기 넘어졌다. 뒤에서 달리던 미국의 애비 다고스티노(28)와 접촉해 균형을 잃었다. 다고스티노가 햄블린의 어깨에 손을 얹으면서 "일어나. 결승점까지 뛰어야지"라고 했다. 햄블린은 곧바로 일어나 다시 달렸다. 그러나 다고스티노는 계속 달릴 수 없었다. 넘어지면서 무릎을 심하게 다쳤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다고스티노가 일어나도록 햄블린이 도왔다. 두 선수는 약 1800m를 마저 달려 결승선을 통과한 다음 뜨겁게 포옹했다. 관중석에서 박수가 쏟아졌다. 다고스티노는 무릎 십자인대가 파열됐지만 "내가 이런 일에 함께할 수 있어 감사하다. 우리를 통해 많은 사람에게 올림픽 정신의 메시지가 전달됐다"고 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국제페어플레이위원회(CIFP)는 두 선수에게 '페어플레이 상'을 줬다.
리우올림픽에서는 처음으로 '난민팀'이 선을 보였다. 남수단(5명), 시리아(2명), 콩고민주공화국(2명), 이티오피아(1명) 출신으로 구성된 난민 선수들이 오륜기를 들고 개회식에 입장할 때 브라질 관중들은 일제히 기립박수를 쳤다. 메달은 없었지만 희망을 안고 목표에 도전한다는 사실만으로 이들은 대회 기간 내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브라질 예술가인 호드리구 시니와 세티 솔레다지는 난민팀 선수 열 명의 초상화를 리우데자네이루 항구 재개발 지역의 올림픽대로 인근 벽에 그려 이들을 기억했다.
◆이제는 평창이다=리우의 바통은 1년 6개월 뒤 평창이 이어받는다.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63)은 "세계의 시선이 이제 평창을 향할 것"이라고 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는 리우 코파카바나 해변에 홍보관을 설치하고 대회를 알리는데 주력했다. 현장은 주말에만 1만 명 이상이 다녀갈 정도로 큰 관심을 끌었다. 리우 올림픽 준비 과정부터 불거진 잡음이나 미비한 시설, 미숙한 대회 운영 등은 되짚어볼 교훈이다. 반면 적은 비용으로도 호평을 받은 개·폐회식은 참고할 만하다. 부족한 국제 스포츠 외교력도 점검해야 한다. 이희범 평창조직위원장(67)은 "리우 올림픽을 지켜보면서 많이 배우고 느꼈다. 좋은 참고자료가 될 것"이라고 했다.
김흥순 기자 spor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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