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들 사이에서 ‘빵집 투어’가 유행이다. 여행하는 도중에 빵집을 들르는 것이 아닌 유명한 빵집에 가기 위한 목적으로 여행을 떠난다고 한다. 군산, 대전, 목포 등에서 수십 년 동안 한 자리를 지켜온 빵집들을 방문해 SNS에 사진과 글을 남기는 것이다.
왜 ‘빵집 투어’가 인기를 끌게 됐을까. 퇴근하는 아버지 손에 들린 단팥빵 한 봉지를 기다리던 추억, 빵집에서 설레는 마음으로 미팅하던 추억들이 동네 빵집의 폐업과 함께 사라졌다. 대형 프랜차이즈 제과점이 골목상권까지 점령했기 때문이다. 맛도 모양도 똑같은 프랜차이즈 제과점 빵을 먹어온 사람들이 이제 전통과 개성을 가진 동네 빵집을 다시 찾아 나선 것이다.
요즘 사회적 이슈가 된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은 비싼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한 토박이들이 밀려나 공동체가 허물어지는 것을 뜻한다. 도심 곳곳에서 일어나는 이런 공동체 위기가 성동구 성수동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폐공장과 창고들로 차갑고 칙칙했던 성수동에 젊은 예술가, 카페, 공방 등이 들어서 ‘뜨는’ 동네가 되자 이곳의 임대료는 최근 3년 동안 33%나 급등했다.
성동구는 젠트리피케이션 문제 해결의 열쇠가 ‘상생(相生)’에 있다고 봤다. 우선 모든 일의 근본이 될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조례’를 전국 최초로 제정했다. 그리고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전담부서인 지속가능도시추진단을 신설해 건물주와 임차인 간 ‘상생협약’에 나섰다. 상생협약이 법적인 강제력은 없지만 지역의 상승된 가치를 함께 공유하려는 건물주의 ‘상생(相生)’ 의식이 뒷받침된다면 젠트리피케이션을 방지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될 것이다.
처음 시작할 때는 걱정이 앞섰다. 임대료 안정을 위한 상생협약이 건물주 재산권을 침해하고 시장경제 논리에 어긋난다는 목소리도 들려왔다. 협약 체결을 설득하기 위해 간부직원들이 건물주들을 만나고, 성수동 지역의 건물주 255명에게 상생 협조 서한문을 발송했다. 지속가능도시추진단 전 직원들도 건물주를 찾아다니며 급격한 임대료 상승을 자제, 입점해 있는 영세 소상공인을 보호하자는 상생협약에 동참해 줄 것을 부탁했다.
상생협약 체결을 위해 발로 뛴 지 8개월, 255명의 건물주 중 57%인 144명 특히 지역내 거주 건물주 72%가 협약에 동참하는 획기적인 성과를 거뒀다. 불가능하기만 했던 일이었지만 이제 조금씩 희망이 보인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자신의 손해를 조금 감수하더라도 이웃과 함께 살아가겠다며 상생협약에 동참해준 분들께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자율적인 상생협약 추진과 더불어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관련법 제·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 사실에 공감하고 젠트리피케이션 폐해에 심각성을 느낀 전국 39개 지자체가 모여 ‘젠트리피케이션 방지와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위한 지방정부협의회’를 구성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뜻을 함께한 아군들이 생겨 무척이나 든든하다.
지방정부협의회는 앞으로 지자체 간 긴밀한 협력체계를 구축해 젠트리피케이션 방지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은 물론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의 개정과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특별법 제정이 이뤄질 수 있도록 공동 대응해 나갈 것이다.
법 제·개정에는 이해관계자들 갈등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지난 2012년 정부는 유통법 개정을 통해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의 영업시간 제한 및 휴무일 지정을 의무화하도록 했다. 골목상권 보호를 위해 시장경제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이 만들어진 선례가 있기 때문에 젠트리피케이션 방지에 대한 전국적 관심과 국민의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특별법 제정도 가능하리라 믿는다. 서로 북돋으며 함께 잘 살아가는 도시를 만들기 위해 상생을 해야 할 때다.
정원오 서울 성동구청장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