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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독도 한일합병 이전 편입”주장 반박하는 결정적 문서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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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독도 한일합병 이전 편입”주장 반박하는 결정적 문서 발견 사진 오른쪽 문서는 시마네현청이 오키섬 촌장에게 질의한 문서이고, 왼쪽 문서는 오키섬 촌장이 보낸 문서 326호 답변서/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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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정유진 인턴기자] 일본이 독도는 한일합병(1910년) 이전에 시마네 현으로 편입돼 한국에 반환할 필요가 없는 영토라는 주장을 반박할 수 있는 결정적 증거가 일본 문서에서 발견됐다.

15일 김문길 한일문화연구소 소장은 일본의 '다케시마(일본이 부르는 '독도' 명칭) 자료관'에서 독도가 한일합병 이후인 1939년 편입됐다는 내용의 문서 2장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일본은 1905년 2월 22일 즉, 한일합방 전에 시마네 현의 고시로 독도가 이미 편입됐다고 주장했다. 때문에 1945년 태평양 전쟁 패전으로 일본이 한국에 반환해야 할 영토에서 독도는 제외된다는 논리다.

일본의 터무니없는 주장에 국내 역사학자들은 '고시'로는 타국의 영토를 편입할 수 없다고 반박했고 '고시'의 원본은 없고 사본만 있다는 점도 인정될 수 없는 부분이라고 반박했다. 일본은 '고시'의 원본이 1945년 불에 탔다고 주장한다.


또한 이 '고시' 사본에 내부 문서를 알리는 '회람' 도장이 찍혀있는 것으로 보아 대외적으로 완료되지 못했다는 주장도 있다.


이런 일본의 빈약한 주장을 반박할 만한 결정적인 문건이 광복절에 공개됐다.


김 소장이 발견한 문서는 '고시'의 적절성을 떠나 일본 자체적으로 독도가 한일합병 이후에 편입됐다는 것을 인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그 의미가 크다.


입수한 문서 2장은 각각 1939년 9월 일본 시마네 현과 시마네 현 소속 지방촌인 오키섬의 촌장이 주고받은 것이다.


1939년 9월 15일 시마네 현청은 오키섬의 촌장에게 독도의 편입 시기와 방식에 대해 질문한다. 김 소장은 이 질문이 오고 간 이유가 일본 마이즈루 해군 사령부가 독도를 작전 구역으로 삼기 위해 시마네 현에 독도와 관련된 내용을 질문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오키섬 촌장은 1939년 9월 24일 문서 326호에 그 답을 적어 보냈다.


문서에는 "다케시마를 쇼와14년(1939년) 4월 24일 편입했으며 당시 촌의회를 거쳐 만장일치로 편입했다"고 정확한 날짜를 적은 답이 적혀있다.


김 소장은 "문서 326호가 밝힌 대로 독도가 1939년에 편입됐다면 편입 시기가 한일합병인 1910년 이후이기 때문에 독도는 1935년 일본 패전과 동시에 주권을 반환받은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제껏 일본이 주장한 1905년의 고시가 대외적으로 표방되지 못하고 '회람' 상태였다는 정황과도 딱 떨어진다"고 말했다.


아울러 김 소장은 "그동안 고시로 독도를 편입했다는 일본의 어처구니없는 주장도 문제이지만, 그 주장마저 자신들 내부 문서에 의해 반박되는 이런 상황에서 일본은 영토 확장에 대한 야욕을 당장 버려야 한다"고 비판했다.


한편 김 소장은 부산 외국어대학교에서 30년간 교수로 재임하며 역사를 가르쳤고, 2010년 퇴임 후 한일문화연구소를 설립해 소장을 맡고 있다.




정유진 인턴기자 icamdyj71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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