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관리책임자'는 여신심사 겸직 금지?…금융위 "참여는 해도 결정은 못해"
[아시아경제 손선희 기자] 다음 달 1일부터 시행되는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금융사 지배구조법)'에서 모든 금융사에 무조건 1명 이상 두도록 한 '위험관리책임자'의 업무영역을 놓고 금융당국이 어정쩡한 입장을 취해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당장 내달부터 적용되는 법안의 세부규정에 대한 해석이 분명치 않아 자칫 은행들은 모두 '위법'을 저지르게 될 가능성도 있다.
핵심 쟁점은 법안에 있는 '위험관리책임자의 겸직금지' 규정이다. 법안 제28조에 따르면 금융사들은 자산 운용이나 각종 거래에서 발생하는 위험을 점검, 관리하는 위험관리책임자를 반드시 1명 이상 둬야 한다. 얼핏 보면 일반적으로 각 은행이 이미 부행장급으로 두고 있는 '리스크담당그룹장 혹은 본부장' 등이 여기에 해당돼 명칭만 변경하면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법안 제29조에 명시된 '겸직 금지' 조항이 문제다. 법안은 위험관리책임자로 하여금 '금융회사의 본질적 업무 및 부수업무'를 겸할 수 없도록 제한하고 있다.
금융위는 위험관리책임자가 겸직제한 요건 중 하나인 '금융사의 본질적 업무'에 여신심사도 포함된다고 보고 있다. 이형주 금융위 금융정책과장은 27일 은행권 실무자를 대상으로 연 법안 설명회에서 "여신심사를 포함한 여신관리 전반 업무는 은행의 본질적 업무가 맞다"며 "때문에 위험관리책임자는 의견 표명은 할 수 있어도 표결과 같은 중요한 의사결정에는 참여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같은 유권해석을 따르면 자산건전성을 챙겨야 할 리스크관리책임자는 정작 불건전 여신관리 업무에 대한 결정을 할 수 없게 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리스크담당그룹장이 위험관리책임자로 지정되면, 여신심의위원회에도 참여할 수 없다는 얘기"라고 지적했다. 시중은행들은 일반적으로 리스크담당 최고책임자를 여신심의위원회의 위원으로 포함시켜 운영하고 있다.
설명회 현장에서 이의가 제기되자 이 금융정책과장은 "심의위 참여 자체는 막지 않는다"고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표결과 같은 중요한 심사 결정에는 참여할 수 없다"고 유권해석했다. 이 경우에도 위험책임관리자는 '여신심사 과정에는 참여하지만 의사결정은 할 수 없는' 애매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결국 금융위 관계자는 "추후 현장 실태파악을 거쳐 더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겠다"고 했다.
위험관리책임자를 임원급으로 두지 않고 있는 외국계 은행 국내 지점도 문제다. 법대로라면 일반 직원을 '임원급'으로 승진시켜야 할 판이다. 위험관리책임자는 '주요업무집행책임자'로 분류돼 법 전반에서 임원에 준해 각종 조항을 적용받기 때문이다.
금융위는 "위험관리책임자라는 명칭만 사용하면 꼭 임원이 아니더라도 책임자로 간주하겠다"며 "직원에게 해당 명칭을 부여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또 이 유권해석을 따르면 국내 금융사들의 경우 각종 까다로운 제한규정을 피하기 위해 실제 최고책임자는 별도로 두고 일반 직원에게 위험관리책임자 명칭만 부여하는 형식적 운영도 가능해진다.
은행권 인사 담당자들은 "답답하다"는 입장이다. 현장에 있던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법 때문에 당장 위험관리책임자를 새로 구해와 금융위에 보고해야 할 판이다"며 "황당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해당 법안은 8월부터 곧바로 적용된다. 특히 위험관리책임자의 경우 금융위는 '업무의 중요성을 감안해 별도의 경과조치를 규정하지 않고 시행일부터 바로 적용토록 규정한다'고 명시했다. 다만 최초로 도입되는 제도임을 감안해 10월 말까지 3개월의 준비기간이 주어진다.
손선희 기자 shees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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