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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시선]신자유주의의 황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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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시선]신자유주의의 황혼? 김환학 서울대 행정연구소 특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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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마르크스의 그 유명한 공산당선언은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떠돌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다"로 시작한다. 지금도 하나의 유령이 전 세계를 떠돌고 있다. 이번에는 고립주의라는 유령이다. 하지만 그의 시대와 달리 우리 시대의 모든 기존 세력이 이 유령에 대항해서 결속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음습하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는 그래도 흥미롭게(?) 지켜볼 여유가 있었다.


병풍 속의 닭인 줄 알았던 트럼프가 미국 공화당 후보로 확정되자, 그의 공약은 영화 '전우치'의 강동원과 김윤석이 외는 주문만큼이나 우리를 긴장시킨다. 요약하자면 미국의 대외적인 안보 및 경제정책을 축소시킨다는 것이다. 민주당에서도 샌더스만이 아니라 후보로 확정된 클린턴 역시 이쪽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 브렉시트와 마찬가지로 신자유주의의 그늘을 제대로 파고들었기 때문이란다. 요즘 들어 부쩍 자주 듣는 신자유주의는 도대체 무엇인가.

신자유주의가 태동한 1980년대 미국을 보자. 미국 경제는 본래 대외의존도가 높지 않았다. 원자재와 에너지가 충분하고, 내수시장이 그 자체로 규모의 경제를 이룰 수 있는 만큼 크기 때문이다. 노동자들 역시 시장개방보다는 보호주의를 선호했다. 하지만 금융자본이나 다국적기업, 군수산업 등의 팽창지향적인 세력들은 이해관계가 달랐다. 그들은 회전문 인사와 선거 기부금, 매스미디어 등 다양한 경로로 정관계와 결착하고, 개방에 부정적인 세력을 공론에서 배제함으로써 대외정책을 개방적으로 이끌었다.


대척점에 있는 시민단체와 노조는 이에 대해 조직적 대응을 하지 못했다. 강력한 이익집단들을 포섭하고 비토세력을 배제함으로써 지배체제의 주류를 형성한다는 그람시의 헤게모니이론이 그대로 적용된 경우다. 이에 더해 헤리티지 등 유명한 싱크탱크에서 정립한 기준들이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이름으로 확장됐고, 이는 미국의 대외개방세력이 갖는 이익을 전 세계로 규범화하는 데 기여했다. 이렇게 보면 신자유주의는 보편적 이념도, 자연스러운 세계적 흐름도 아닌 특정세력의 헤게모니를 위한 기획이었다고 할 것이다.

이 기획에서 배제되고 소외된 계층의 반발이 지금 브렉시트에서도, 미국의 대선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물론 신자유주의의 직접 피해자인 노동자 계층은 그 사이 선진국에 일반적인 산업구조의 변화로 그 인구비율이 줄었을 뿐 아니라,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분리로, 이른바 고용유연성으로, 비정규직의 비조직성으로 말미암아 그 힘을 잃었다. 이 이익대표의 빈틈을 진보세력이 아니라 우파 포퓰리스트가 선점한 것이다. 과연 트럼프가 당선되면 노동자와 민중을 위해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와 세계무역기구(WTO)에서 탈퇴하겠다는 공약을 실현할 수 있을까. 한미자유무역협정(FTA)도 철회하고 주한미군도 철수할 수 있을까.


가장 큰 변수는 신자유주의의 은총을 받아 성장한 글로벌 플레이어들이다. 이들은 태생적으로 국가의 경계를 넘는 인간과 자본, 정보의 네트워킹 즉 세계화를 지향하는 속성을 갖고 있어 고립주의와 갈등관계에 있을 것으로 보이기는 한다. 그러나 새로운 과학기술의 발전에 바탕을 둔 4차 산업혁명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다시 그 성격이 달라질 수 있다. 인간을 기계로써 대체하는 자동화의 정도만큼 인력은 생산요소로서의 비중을 잃게 된다. 인건비가 사소한 문제인 기업이라면 굳이 싼 인력을 찾아 외국으로 나가거나 외국 인력을 받아들이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렇게 글로벌 플레이어와 고립주의의 갈등은 부분적이다.


20세기 초와 같이 미국의 고립주의가 전적으로 재현돼 대공황과 전쟁으로 이어지지는 않더라도 대안 없는 신자유주의의 퇴조는 우려할만한 것이다. 어쨌거나 국제관계에서 평화와 번영은 상호의존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의 싱크탱크는 어떠한 이념의 신상품 혹은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낼까. 신상품 개발은 자본주의 시장에서 값을 올리는 전형적인 기법이어서, 우리는 신자유주의보다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






김환학 서울대 행정연구소 특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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